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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것저것 Dec 23. 2021

용산 포장마차촌

다큐멘터리 3일, 용산 포장마차촌

쌀쌀한 바람이 불고, 괜히 쓸쓸해지는 그런 날에 편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즐길 수 있는 장소. 세상살이가 버거워 잠시 혼자가 되고 싶은 그런 날 찾게 되는 그런 곳이 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도시생활, 빌딩 숲 속에 낮게 엎드린 용산 옆 앞 포장마차 촌이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7시, 용산역 앞에는 화려한 불빛들이 켜지고 활기가 가득 찬다. 본격적으로 손님들을 맞이 하기 위해 하나둘씩 포장마차들이 문을 연다. 이 포장마차들은 지친 직장인과 다양한 사람들의 고된 하루를 위로하기 위해 고소한 기름 냄새와 매콤한 양념 맛으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빨간 지붕 밑 포차로 들어가면 다양한 손님들이 있다. 20대의 젊은 대학생부터 70대의 등산 동호회의 할아버지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공간인 것이다. 다들 각각의 이유로 포장마차를 온 것이지만, 그들이 포장마차를 좋아하는 이유 중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포장마차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새내기 생활로 잔뜩 신이 난 20대 대학생들은 포장마차에 오면 이모님이 너무 편하게 잘해주시고, 단골손님인 것을 기억하고 서비스를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모습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한 ‘정’이 자신들에게 전해졌고. 포장마차에서 다 같이 즐기면서 술을 마시러 오는 것이지만, 오히려 오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위로받고 갔던 적이 더 많아서 자주 찾아오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가족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60대 가장의 아버지들은 단 둘이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자식들과 손주들 이야기를 안주 삼아 포장마차에서 한 잔을 기울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친구와 함께 잔을 맞대며 정을 나눈다. 자신의 큰 딸은 천사, 작은 딸은 공주라고 말하며 연신 웃음을 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오로지 자식밖에 모르는 아버지에게 PD가 ‘딸이 결혼식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어떠한 말이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했고, ‘미안하다’고 답한 아버지의 답변은 지금 우리 아버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충분히 잘해주셨지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혼자 오는 손님들도 있다. 생각할 것도 많고 잊어버려야 할 것도 있어 한 잔 마시기 위해 혼자 오신 50대의 손님. 가장 잊고 싶은 일이 뭐냐는 PD의 질문에 그는 일 처리가 잘 되지 않아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지칠 때마다 그는 차가운 소주 한잔에 따스한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오늘 현재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오늘을 열심히 살았으니까, 잘 지냈으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건배를 한다’고 말이다. 얼굴은 웃으며 말하지만 카메라 뒤로 보이는 그의 축 처진 어깨와 멋쩍은 미소는 나에게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이러한 포차 거리를 지나갈 때, 혼자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과 여럿이서 시끄럽게 술을 마시는 20대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술이 맛있어서 먹는 걸까?’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어렸을 때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종로의 포장마차에 가본 적이 있다. 내가 다큐에서 봤던 것처럼 큰 포차들은 아니었지만, 작은 포장마차들이 길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놀았을 때, 이모님들이 친근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고, 서비스도 주시며 정겹게 대해 주셨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그 정겨운 분위기와 즐거웠던 술자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직접 포장마차에서 술자리를 즐긴 후, 어렸을 때 했던 생각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즐기고 싶어서일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일이 너무 힘들어서 먹어야 무언가를 풀 수 있을 때,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큐는 2013년에 방송된 촬영본이다. 현재 용산 포차 거리는  철거되고 그곳에는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낮게 엎드려 있던 포차들마저도  사라진 그곳에는 수많은 빌딩들과 건물들로 가득 메워져 있기 때문에 서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상 감성을 자극하는 기름 냄새는 맡을 수가 없다. 최근 재개발로 인해 많은 포차 거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 개발로 인한 재개발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계속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면 나중에 살다가 향수를 느끼고 싶을 , 혹은 주변에 이런 ‘ 느낄  있는 곳들이 필요할  내가 있을 공간이  없어질 것만 같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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