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시

옥수수

by 윤사랑

<오래전의 약속>


한 알,

그 자리에 정확히 박혀 있다.

빈틈 없이,

흔들림 없이,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이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수많은 알들이

나란히,

겹겹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를 떠받치며

한 몸을 이루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자신의 순서를 따른다.

자신의 약속을 살아낸다.


그건 생명의 질서이고,

존재의 배려이며,

시간을 건너온 사랑이다.


옥수수는 말없이 속삭인다.

“우리는 함께 태어났다.

함께 자랐다.

함께 여물었다.”


그들은 흙을 기억하고,

햇빛을 나누고,

바람을 견디며

서로의 자리를 지켜낸다.


그건 단순한 열매가 아니다.

그건 오래전의 약속이다.

“네가 거기 있을 때,

나는 여기 있을게.”


그들은 함께 세상에 나왔다.

함께 익어갔다.

그리고 함께

누군가의 손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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