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May 29. 2024

여든두 번째 : 어렵게 넘긴 한 고비

아프진 않았는데 무섭기는 하더라

출처 : Greetabl


오늘 진료를 원래 오전에 안 하시는데 오전에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진료실도 다른 곳이었어요.


의사 선생님 그러니까 교수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4개 과 교수님들이 있었고, 어머니하고 저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버지 후배가 말씀해 주시더군요.


워낙 특이한 케이스고 병의 진행도 너무 순식간이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지해야 할 것도 있고 해서 암은 아니지만 다학제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이번에 생긴 병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너무 여러 과에 걸쳐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최악의 상황에는 각종 절제 및 적출이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 정말 환장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식겁했다고 하시더군요.


가장 의사 선생님들이 궁금해하셨던 건 '통증' 부분이었습니다.


저를 치료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국소마취를 해서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제가 통증을 잘 참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는 하셨어요.


그래서 물어보시는데 그냥 이렇게 답변해 드렸어요.

첫날 지금 병원에서 안 보이는 전공의 하나가 마구잡이식으로 바늘 찔러댄 거 빼고는 솔직히 아파서 일상생활이 안되고 그런 건 없었어요.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37


그러니 아버지 후배가 그냥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자기 아버지는 조금만 아프면 병원에 왔었는데,
쟤는 자기가 무슨 불사신인줄 아는 건지...... 에휴

순간 의사 선생님들하고 어머니하고 저도 다 웃었어요.


원인은 결국 여러 가지 검사를 다 해봤는데, 병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어요. 혹시 몰라서 의심되는 유전병에 대해서도 전부 다 해봤는데 아니더군요.


어머니는 유전병은 아닌 것 같다고 하자마자 우시더군요. 그게 제일 겁이 나셨나 봐요.


어머니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자식 낳아놓고 이렇게 AS를 잘해주는데,
유전병이면 뭐 어때?
그닥 나도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닌데,
벌어진 거 어떻게 방법이 없지 않나?


또 그 진료실에 있던 6명이 다 웃었어요. 저도 할말이 없으니까 그냥 아무말 대잔치 한거죠.


그러고서 그냥 조심하라고 이야기 들었고, 급성기는 지나가서 일주일에 1번으로 일단 통원을 줄이기로 했어요.


약도 종류가 다 바뀌었어요. 일단 tab수도 줄어서 복용하기는 편하겠더군요.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다 좋아졌는데 왜 갑자기......
이것보다 더 큰일도 잘 견딘 사람이 그러나?
어차피 절단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거고,
일단 잘 끝났으니까 어디 가서 엄마 좋아하는 달달한 거나 마십시다.


저도 겁은 났어요. 일단 수술 확률이 너무 높았고, 병이 진행되는 게 1시간마다 이게 다르더군요. 점점 손이 터질 것 같이 부었다가 갑자기 색도 변하고......


의사 선생님도 교과서나 그런 곳에도 없는 수치와 병의 진행이라고 하시더군요. 의사 선생님께서 혹시 몰라서 상처를 내서 일부를 열어놓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 좁은 손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 보니, 나중에 저는 죽는 건 차치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겁이 나더군요.


항상 제가 부모님보다 오래 살 거라는 그런 당연한 명제에서 제가 비껴갈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좀 많이 힘드실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는데, 좀 많이가 아니더군요. 지금 조금 위험한 상황에 이러시는 걸 보니, 다시 죽을 고비가 다른 형태로 왔을 때 과연 내 부모님이 견딜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조금 더 나간 이야기이지만, 이 문제 말고 벌써 몇십 년이 지난 일 때문에 자살을 생각했었습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0


여기서부터 좀 험한 말로 제가 얻은 깨달음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저런 하찮은 선생 새끼 때문에 내가 자살까지 하고, 유서를 쓰고, 그거를 가지고 교육청하고, 교육부에 뿌리고, 이런 짓거리를 했다고, 저 선생 자식한테 타격이 갈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런 새끼 하나 치워버리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전교조 끄나풀들이 열심히 교권을 외치는데 저같이 하찮은 사람이 자살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살아서 저 새끼가 무너지는 것을 그리고 저 새끼가 박살 내놓은 것들이 박살 나는 순간을 그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의 위기가 사람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는 것은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나이가 좀 차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 그런지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저도 이제는 선배가 말해준 것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즐거운 생각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에도 인생은 짧으니까 좋은 것만 생각해.



매거진의 이전글 여든한 번째 : 뒤통수 맞기 직전에 대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