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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ug 20. 2024

쉰일곱 번째 : 집이라는 애증의 공간

산전-수전-공중전에 이제는 더 뭐를 해야하나?

출처 : Adobe Stock


이제부터 어쩌면 평생일 수도 있고, 그 곳에 중장기 개발계획이 잡혀있어서 평생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 가족은 집짓기 과정에 들어갑니다.


비싼 아파트도 살아봤고, 저렴한 아파트도 살아봤고, 관사(官舍)에도 살아봤고, 마당이 200평인 전원주택에도 살아봤습니다. 그냥 부모님 친구분들만 해도 어느 동네에 산다는 것이 굉장히 삶에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던 시대 그리고 현재도 그것이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모든 주거의 편의성 이런 부분들을 '아버지'에 다 맞췄어요. 우선 아버지가 몸이 안좋으시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하시고, 본인이 할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서, 최대한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데 목적을 두고 이사를 다니고 했습니다.


단 해외에 나가있을 때만 어머니 기준으로 움직였고, 그런데 당시에 아버지는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교통비를 주셔서 편하게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비교적 서울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저에게 시련이 오기 시작한건 우리 옆집이 이사오면서부터 입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입이 아플 정도로 개념을 밥말아먹은 분들이거든요.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8


물론 서울에 살면서도 윗층 사람들이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계속 뭘 하는 것 같은데, 식탁위에 전등 갓이 떨어질 정도로 소음과 동시에 너무 흔들려서 조금만 조용해달라고 말 한마디 했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내가 고대 법대를 나왔는데, 당신은 어느 대학 나왔어?


물론 제가 '고려대학교' 징크스가 있기는 합니다. 이건 10명이 넘는 주변 사람이 인정한거니까...... 정말 징크스인 것 같아요. 병원에서 저한테 의료사고를 낸 의사 3명이 그 학교를 나오신 분이고, 저랑 사사건건 부딪히던 교수도 그 학교 출신이고, 제가 일대일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데 담요를 가져다 줬더니 선생이 갑자기 복장의 자유를 운운하며 저랑 대판 싸운 사람도 그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냥 제가 이상하게 '고려대학교'하고 '한양대학교' 이쪽 하고는 잘 안맞는 것 같아요. 무슨 일도 많았고, 우리 부모님은 잘 모르시는데, 제 지도교수님이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엮으려고 엮은게 아니라 저랑 안좋은 일이 있고나서 전부 공통적으로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이렇습니다.

나 ~ 나왔는데~~~~~~


하여튼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고, 당시에 저는 그냥 잡대를 나왔다고 이야기 하고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이 완전 열받으셔서......

난 ~ 나왔는데, 거기가 그렇게 좋은 학교냐?
못났다.
졸업한지 꽤 된것 같은데, 법대 나오고 어디 다니니?


이러셔서 졸업장 보여주고, 내용증명으로 어머니가 열받아서 다른 것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웃을 이상한 사람을 만난 경우도 있었고,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갑자기 입주를 하고 나서 공사를 시작하더니 그 아파트에 사는동안 계속 공사를 했던 아파트도 있었어요.


주택에 살 때에는 낙엽을 쓸고, 나무 잔가지를 자르다가 너무 지쳐서 119에 실려간 적도 있었고, 잔디를 깎아야 하는데, 그때 저나 아버지가 잘못생각해서는 전동 잔디깎이를 사야하는데, 전기세가 아깝다고 그냥 잔디깎이를 샀다가 거기에 잔디가 다 엉켜서 결국 돈이 더 들기도 하고 또 병원 신세를 졌던 기억도 납니다.


집에 있어서는 산전-수전-공중전 까지 다 겪은 우리 가족이 이사를 결심하고 나서, 처음 계획은 '그냥 지어진 집을 사서 가자'라는게 중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온 매물들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했고, 심지어는 집을 보러 다니다가 부모님이 충격을 받으신 경우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대학 다니실 때의 그 동네와 지금의 그 동네의 괴리가 너무 심해서 충격을 받으셨어요.


세월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괴리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찾다찾다 이럴 바에는 그냥 새건물을 올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의 요구사항은 확실했습니다.

집에 돈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최대한 생소함을 피하면서,
디자인은 상관없고,
유지보수에 최소한의 신경을 쓸 집.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주문일 수도 있고, 건축사이신 외삼촌은 그런 집을 건축사들이 가장 싫어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우리 가족이 집을 짓는 다는게 소문이 난건지 아니면 정말 비밀리에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서들 부모님이나 저한테 전화가 오시는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아버지랑 같이 다니시던 친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려고 하더군요.


이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했거든요.


우선...... 우리 가족은 집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저도 집을 한국에서 1채 그리고 외국에서 1채를 짓는 과정을 다 봤지만, 사람 1명이 다 돈이거든요. 아무리 아버지 친구라고 한들, 돈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례비라도 안챙겨드릴 수가 있나요?


갑자기 아버지 친구분들이 모여서

[Calm의 아버지 이름]의 집은 내가 할거니까 빠져.


이러고들 있더군요. 그냥 어차피 우리 집은 우리 외삼촌이 하실텐데, 그냥 집에 돈 쓸 생각도 없고 해서, 다 가시라고 말을 하고 싶은게 정말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그냥 내버렸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 말을 저는 전형적으로 체험한 사람이라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냥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제가 좀 사람이 많이 비뚤어진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수많은 일이 닥쳐올테고, 이게 제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숙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꿈보다는 부모님이 먼저고 그리고 우리 집을 지켜내는게 먼저다.


항상 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에 있는 제 친구는 제가 이런 말을 하는거를 엄청 싫어할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릇도 작고 슈퍼맨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다 잘해낼 수도 없고, 지금도 별로 잘해내는게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서요.


그냥 오늘 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서류 작성을 8시간 정도 하다가 마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글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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