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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ug 31. 2024

[20240831] 으이구

From 의사 선생님

출처 : WORDROW


며칠 전부터 목이 칼칼해서 침을 뱉는데 자꾸 피딱지가 나왔다. 담배를 피운 적은 없어서 그냥 목이 부었나 보다 했다.


몸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기가 싫어서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한숨을 쉬시면서 말씀하셨다.

으이구.


많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나한테 말씀하셨다.

아프면 지체하지 말고 제발 병원에 와주라.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래서 그냥 요새 하도 전공의 파업에 의료대란 그리고 코로나까지 다시 돈다고 해서 그렇다고 말씀드렸고, 응급 아닌 사람은 병원 가지 말라는 식으로 말해서 굳이 돈 들여 가며 욕먹고 싶지는 않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갑자기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미안하다.


갑자기 내가 더 죄송한 마음이 컸다.


의사 선생님께서

너는 그냥 와라.
더 큰일 나기 전에.


라고 하시고는 소작기로 특정 부분에 처치를 해주셨다. 목뿐만이 아니라 코도 꽤나 깊숙한 곳에 다 터져 있어서, 특히 콧속은 깊은 부분까지 정말 많이 갈라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냥 쉽게 갈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병원에 온다고 욕할 사람 아무도 없고, 나에게 관리가 필요한 환자니까 상관없다고 하셨다.


사실 어제 친한 형님과 누님에게 조언을 받고 나서 과거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대한민국에 와서 담임선생은 정말 2명 정도 제외하면 다 개자식들을 만났는데, 이상하게 의사 선생님들은 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 같다.


특히나 이비인후과 선생님도 그중에 한 분이시다. 아버지나 나나 인두나 후두 쪽이 너무 약해서 병원에 자주 갔었는데, 그래서 익숙한 부분도 있고, 이사를 가도 이비인후과를 가장 먼저 찾는 편이다.


이사를 갈 날이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마음이 조금 그렇다.


사실 이비인후과나 여타 다른 의사 선생님들만 생각하면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정말 이상한 곳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4년 정도 살면서 정말 뭔가 '슬럼가'에 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동네가 이상해져 버렸고, 그리고 이제는 이 동네에 우리 가족은 연고가 없다.


그냥 이사 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비인후과 선생님과는 아마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인연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게 나이가 30대 중반이 되면서 20대에는 흐르지도 않았던 눈물도 흐르고, 감정기복은 덜해졌는데, 표현이 된다는 게 너무 창피하고 그렇다.


갑자기 생각이 나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부모님께 못할 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그래도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앞에서 나한테 타박을 하거나 속된 말로 '지랄'을 하면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

우리 아들은 바로 돈 몇 억을 그냥 벌어버려서 나는 그렇게 우리 아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한 순간에 번 것이 아니고 4년을 참아서 하는데 놀랐어요.

나 같았으면 벌써 때려치웠을 텐데, 그걸 버텨서 결국은 자기 생각대로 상황을 만들어서 마무리를 지어버립디다.


특히 어머니는 요즘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처음에는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서 경기도 외곽으로 나가서 여유롭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하도 욕을 먹으니까 '그러면 너네가 한마디도 못하게 해 주마'라는 반발심 때문에 시작된 칼부림이었다.


2024년 07월 23일 화요일이 지나고, 몸이 점점 안 좋아짐을 느끼고 있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학적으로도 발견이 된 부분들이 있어서 치료도 받고 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부분도 이해가 가면서도 솔직히 이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아프면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니까 별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머리수술을 할 때도 지인들에게 수술받기 4일 전에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주사도 맞고, 약도 받으면서 생각이 많아져서 적어봤다.


적어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니까 그냥 기승전결이 없는 '막글'이 되어버렸다.


브런치에서만 부릴 수 있는 귀여운 행패라고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로 내 글을 보고 피로감이 든다는 분도 계시고, 그냥 염려를 하시는 분도 계시고, 좋은 말을 해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냥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남성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많이 기대 왔던 게 이비인후과 선생님인데...... 주기적으로 만날 거고 하지만, 뭔가 이별을 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의사랑 친한 건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를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건 다 의사들이었다. 그중에 의사 선생님 한 분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Calm(가명)씨는 내가 수술을 안 해주면, 그냥 죽음을 받아들여버릴 것 같아서, 나도 의사 그만두기 전에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에요.


나도 이 말을 듣고서 지금도 당시에 수술을 해줬던 집도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나한테 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모르겠다.


이상한 괴롭힘은 계속되고, 멈출 때가 되면 새로운 게 다가오고, 한 번은 종교시설에 가서 진상을 부린 적도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그냥 이제는 다 놓고 하나씩만 하고 싶다.


그리고 친한 누님이 이야기해 준 것처럼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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