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박웅현>을 읽고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 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여덟 단어 - 박웅현>
책을 읽으면서도 저 부분이 좋다고 생각해 줄을 그어놓았었는데, 시간이 자나고 나서도 종종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내 머리에서 종종 떠오르던 말은 여행을 생활처럼 보다 생활을 여행처럼 이었다.
10년 전 미국으로 오면서 상당기간을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 것이라 예상하며 오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란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간다. 이곳에서 이미 쌓아온 커리어와 인맥, 그리고 아들의 학교생활 등등을 생각하면 한국으로는 나이가 꽤 들기 전에 돌아가는 건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이곳은 내가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강한 지, 이곳에 사는 동안 미국 여행을 많이 하려고 열심이고, 여행자처럼 새로운 곳을 찾아서 주말마다 돌아다니곤 한다. 나는 여기에서 생활도 하지만 여행자라고도 생각하는구나 싶고,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안타깝기도 하다. 꽤 오랜 시간을 살았는데도 이곳이 그만큼 편하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까..
1,2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꼭 방문하려고 하는데, 코로나로 4년간 한국을 못 가다가 재작년 겨울에 한국을 다녀왔었다. 미국 가기 전에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던 나는 서울 유명 관광지를 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때 서울 기념품을 산 적은 없었고 살 생각도 당연히 한 적이 없었다. 서울은 항상 내가 사는 곳이었고,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고, 서울 관광지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기념품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지도 않았었고, 구경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었다. 재작년 겨울에 남편, 아들과 함께 남산을 올라갔다가 나랑 아들은 서울 기념품 자석을 하나씩 골라서 구매했다. 서울은 이제 나에게 언제 다시 살게 될지 모르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
처음 미국으로 올 때 동부로 와서 오랜 기간을 살다가 재작년에 중남부에서 짧게 살게 되었었다. (이제는 다시 동부로 이사를 왔지만) 동부와 중남부는 날씨는 당연하고, 사람들 분위기, 인종 분포, 시차, 음식까지 너무나도 달라서, 미국 내 이사였지만 주가 달라지니 (특히 거리가 멀어지면) 거의 이민 가는 수준과 비슷했다. 미국 중남부로 이사 가며 길어야 2년 정도 살게 될 지역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가긴 했었는데, 어차피 곧 떠날 곳이라고 생각으로 정을 안 줘서 그랬는지, 그 지역에 적응하고 그 지역을 만족하는 데까지 더 오랜 기간이 걸렸었다. 동네에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좋은 부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을 때 저 책을 읽었었고, 저 문장이 이곳을 어차피 떠날 곳이라면 있는 동안 충분히 즐겨야 하지 않겠어?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이곳이 그리울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지내는 동안 충분히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만 생각하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곳에 한정된 시간 동안 있다가 가게 된다. 누군가는 좀 더 짧게, 누군가는 좀 더 길게. 이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내 선택이다. 만족하면서 기쁘게 살 건지, 불만을 하느라 이 시간을 불만 속에서 보낼지 그건 우리의 선택이다. 인생을, 내 하루하루를 꼭 가보고 싶던 곳에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훨씬 더 즐거운 삶이 되지 않을까? 오늘도 여행지에 온 것처럼, 새로운 카페도 가보고, 새로운 음식도 먹어보고, 새로운 생각도 하면서 조금은 더 새로운 걸 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