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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Jun 29. 2024

고3 그 여름, 가평

가평 콜? 콜!!

벌써 20년도 전인 고3시절 여름방학. 이름은 여름방학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매일아침 학교를 갔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의무 아닌 의무이었기에 방학이라고 해서 진짜 방학은 아니었고,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끌며 학교로 향했다.


여름방학의 초반 몇 주는 보충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학기중과 마찬가지로 오전엔 수업을 들어야 했고, 모두가 교복을 입고서 학교를 가야만 했다. 하지만 보충수업기간이 끝나고 자율학습만을 하기 위해 학교를 가야 했을 때는 복장은 자유였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서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해서 몇 교시의 자율학습을 마치고, 복도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누가 먼저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차 타고 가평이라도 갔다 오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고,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은 자율학습을 째고 지금 갔다 오자는 데에 동의를 해서 바로 실행에 나섰다. 우리가 출발을 하려고 할 때 교복을 입고 와서 함께 가는 걸 망설이던 친구 한 명도 우리의 계획에 합세하고 나섰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학교를 나와서 영등포역이었는지 서울역인지로 갔고,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가평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기차여행에 우리 셋은 신이 나 있었다. 작은 것에도 깔깔거리며 웃었고,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광경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가평역에 도착해서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개울가로 향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입고 있는 옷이 전부였지만, 나와 친구는 물에 뛰어들었고, 서로 물을 뿌려대며 신나 했다. 교복을 입고 온 친구는 자신은 물에는 안 들어갈 것이라며 바위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다가('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노는 걸 보더니 자신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데, 치마이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우리는 주변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텐트를 치고 놀고 있는 게 보였고, 그들에게 가서 바지 하나를 빌렸다. 문제는 그 남자가 내 친구보다 너무 날씬해서 그 바지는 내 친구에게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옵션은 없었기에 그 자크가 올라가지 않는 작은 바지를 입고 치마는 그 위에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들었다.


수영도 하면서 놀다 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와있었다. 돌하나에 서로 까치발을 하고는 목만 내밀고 있었는데, 그 작은 바지를 입은 친구가 균형을 잃고 깊은 물 쪽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친구가 장난친다고 생각하며 서로 깔깔거리면서 웃다가 친구가 정말 물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걸 보자 덜컥 겁이 났다. 어째야 하지 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그 바지를 빌려준 남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가 멋지게 다이빙해서 들어가서 그 친구를 구해줬다.


그 친구는 컥컥 거리며 나와서 우리 보고 자기 빠졌는데 너네 웃는 목소리밖에 안 들렸다며 우리를 째려봤고, 우리는 그 친구를 구해준 남자 이야기를 하며 킥킥거렸다. 그 이후에도 물에서 신나게 놀다 다 젖은 바지를 고이 접어서 돌려주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져서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우리의 옷은 모두 잘 말라있었다.


우리 셋은 그날의 무용담을 다음날 친구들에게 얘기하느라 바빴고, 그날 이후 틈만 나면 가평 이야기를 했었다. 특히 그 오빠인 것 같은 남자의 이야기를 하며 고3의 남은 기간을 잘 보냈었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라 부족한 것 투성이었고, 그 당시 카메라가 지금처럼 내 손안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지만, 그날의 추억은 나와 친구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리고 오늘아침 문득 떠오른 이 여행의 기억이 나를 한참을 웃게 만들어줬다. 그 친구들이랑 다시 한번 훅 떠나고 싶다.


가평 콜??


사진: UnsplashPatti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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