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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a Dec 13. 2024

부끄러운 나 자신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1

 헤르만 헤세는 일생동안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양가적인 어떤 부분에 대해 탐구했던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구도자와 같은 느낌으로 살아간 듯 하다. 그의 삶 대부분이 지독한 우울과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면 내면에서 어떤것들을 완벽하게 통합하지는 못하고 삶을 마감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헤르만헤세의 평생의 탐구 주제는 '내면의 이원성의 통합'이다. 그는 전통적인 사고관 안에서 벗어나 자유를 원하기를 갈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 속 감옥은 전통적인 사고관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나 자신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마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도 나 자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들이 있다. 바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숨기고 싶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도덕관념에 위배될 수도 있고, 도덕관념에 위배된 것이 전혀 아니지만 그냥 내 자신이 그 부분이 싫어서 숨기고 살아가는 어떤 부분 말이다.

 '그 부분'을 보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그런 모습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는 그 때문이다. '그 부분'을 바라보기가 너무나 힘이 들고 고통스럽기때문에 영혼적인 차원에서부터 그 모습을 꽁꽁 묶어놓고 인간적으로 발현을 하질 않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혀 그런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던 어떤 면이, 나에게 서서히 발현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용기를 낸 것이다.


'나는 이제 그동안 외면하고, 바라보지 않았던 내 모습을 바라보겠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극도의 수치심을 동반할 수 있고, 나의 모든 것이 발겨벗겨진 기분, 아무데도 숨을 곳이 없는 기분일 수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는 억울함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숨겨진 자신의 부분이 서서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자기 모습이다. 수면 밑의 모습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뿐이다. 그것을 얼마나 자기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그것이 내면에서의 '이원성의 통합'이다.

 앞서 인간에게는 한쪽 극단이 존재하고, 그것은 마치 스프링처럼 반대극단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자신이 자신이라고 인정하는 한쪽 극단만 발현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에너지는 숨겨지지가 않는 법이라서 반대극단도 드러나게 되지만, 보통은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숨기거나, 억제하고 누르거나, 그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의 어떠한 부분을 숨기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그 부분을 바라보는 것을 무서워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그 어떤'부분이 내가 영혼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아주 핵심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그 부분'을 바라보기조차 어려워하고, 두려워해서,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야'라는 절반짜리 자기 인식을 가지고 몇 생을 살기도 한다. 그러나 영혼의 성장 측면에서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그 부분'은 굉장한 족쇄이며, 자유롭지 못한 어떤 부분이기도 해서, 그 다음 스텝을 원하는 영혼이라면 바로 그 지점을 지속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 바라보기 싫은 내 모습'을 나 자신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때 나의 내면에서는 반복적으로 균열이 일어나게 되고 우울함이 생길 수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다. 마음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싶은데 내 체력이 바닥이라는 것을 못 받아들이면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성인군자이고 싶은데 사실 내면에는 깊은 분노가 있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면 자기 기만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좋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만 상대에게 보여주느라 애쓰노라면 나는 누군가에게서도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어떤 모습만을 드러내보이며,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사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부분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질투심, 시기심,집착, 쾌락에 대한 욕망, 돈에 대한 욕망, 독점욕, 지배욕 등등 온갖 것들이 인간 내면에 다 들어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은 배척하려고 한다. 그게 사실 안 보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극단은 항상 반동을 낳는다고 했는데, 무결함에 대한 집착은 어떤 반동을 만들까? 선에 대한 집착은 어떤 반동을 낳을까?


 내게 '이건 맞고 저것은 틀려'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역풍으로 돌아와 자신이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 '틀림'안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결국 '틀린게 틀린게 아니었구나' '그것을 갈라친 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 시각으로 나를 이해해보자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선/악의 기준이나, 기존의 도덕관념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하면 나 자신은 굉장히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보통 보면 기존의 관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복잡하게 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저 자연물로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양극단이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내면의 균열로 인해서 평생동안 고통받는 일이 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것이 관계성 안에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숨기려고 기를 쓰고 애를 쓰는 나의 모습은, 사실은 영혼의 어느 시점 크게 발목을 잡았을 있는 테마일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혼적인 시간동안, 인간적인 시간동안 애를 왔고 어느정도 극복된 지점일 수도 있지만, 만약 영혼이 부분에 대해서 뛰어넘음을 원한다면, 여전히 남아있는 자기자신의 부분에 대해서 깊이 받아들일 있는 계획을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선/악의 사고틀에서 벗어나, 어떤 원죄의식이나 단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벗어나서 우주의 한 존재로서 깊은 자기인정과 자기 사랑으로 향하는 길이고, 깊은 자기이해로 향하는 길이다.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것- 나 자신을 깊이 받아들인다는 것

 시대 흐름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차릴 때가 올 것 같다. '자기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차린다'라는 이야기에는 나의 영혼적 모습까지도 포함이다. 수면 아래에서 숨겨져 있던 나 자신의 영혼적인 모습, 인간적으로는 채 파악하지 못했던 모습이 인간의 삶으로 조금씩 더 드러남으로서 사람들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항상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것이고, 오히려 숨기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모습일 수 있다. 그 다양한 모습들들 선과 악 혹은 기존의 관념들 안에서만 생각하려고 하면 우리는 자기혐오의 길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 나 자신이 모습을


'나의 어떤 극단과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극단'


가치판단 없이 이렇게 해석한다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쉽지 않고 부끄러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온화하고, 최대한 다른 사람과 마찰 없이 둥글게 살아야만해. 그게 맞는 거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제 그리 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그를 위해 극도로 노력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극도의 적개심을 가지고 배척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던 사람이 단 한번도 드러내지 않던 폭력성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며 그 사람은 죄인이고 나쁜놈일까? 그런 생각이 스스로 들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고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보다 정확하게 우리의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게 된다. 선이나 악의 개념을 뛰어넘어 그저 우주의 한 존재로서 여러가지 성격을 띈, 어떤 자연물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일단 파악하고, 자신이 어떤 극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내면에서 얼마나 조화시킬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삶의 다음 스텝을 나아갈 때 우리 삶의 진폭을 줄여나가고 보다 우리 자신을 깊이 사랑하며,새롭게 우리의 중심점을 찍어나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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