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잘리고
경력증명서와 세금정산서가 집으로 날아오고
택배로 업무용 노트북과 기타 등등을 반납해버리고
하나를 빠뜨려서 본사 여직원의 독촉전화를 받고
뭘 빠뜨렸는지도 모르겠어서 그 전화도 씹으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방청소를 시작했다.
근디 이거이 만만치가 않았다.
끝날듯 끝날듯 하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한쪽에는 다른 치울 거리가 쌓였다.
하기사
이사 온 이후로 5년을 넘게
제대로 된 정리는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느 소설에선가 읽었던 말처럼
핑계지만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있던 시절에는 마음이 바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정리할 물건이 많을 정도로
내 인생이 쌓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를 정리한다고 하기엔
짧은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당장 눈앞의 것만 대충 치우고 살아도,
복잡한 것들은 싹 쓸어 어딘가에 우겨넣으면 되었었다.
그래도 괜찮았었다.
괜찮은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서랍에서 끝도 없이 나오던 나의 물건들은
내가 ‘방치’해버린 나의 세월 같았다.
나를 방치해온 세월만큼
방치되어 온 물건은 많았고,
그 물건만큼의 사연이 그 안에 쟁여져 있었던 거다.
뒤죽박죽. 함부로. 아무렇게나.
쌓이는, 버려야 할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치워도 치워도 어느 구석에선가 끝없이 나오는 이것들처럼,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묵혀두고 삭혀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상처나
그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내 방에서 버릴 물건과 남길 물건을 선별할 수 있는 건 나뿐인 것처럼,
내 마음속을 정리하고,
닦아내고,
가꿀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도, 외면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을 거라고.
더딜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을 말끔히 닦아내고
보송하고 햇빛 가득한 방처럼,
만들거다.
<12~3년 전에 쓴 글입니다. 너무 힘든 시절에 쓴 글이라서 그냥 올리지 말까 하다가 예전과 지금의 변화를 담고 싶어서 올려두었습니다.^^
얘가 전에는 이렇게 살았구나~정도로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