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관련 없는 것의 평화로움

by 우아



초록 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빨간 불에 멈춰서는 사람들. 좌회전하는 버스는 유난히 길쭉하다. 뒤따르는 자동차들은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새끼 오리들 같아. 새끼라기엔 좀 짐승같은 울음을 내뱉는 배기튜닝 차량의 소음, 앞을 보는 사람과 딴짓을 하는 사람, 비밀스런 취기, 아이의 알통 자랑.


지옥은 비어있고, 악마들은 여기에 다 있다. 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길가에 나뒹굴며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를 보자 떠올랐다. 사람같지 않다는 말은 너무 유행해버렸다. 이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이 말은 표출하질 못한다.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가 늘 중요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의 힘은 막강하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관념이라는 쳇바퀴에 굴러들어가 억지로 끼워 맞춰 살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엔 온갖 불평불만을 감내하고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이라는 덫이 도사리고 있다.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은 1984의 지독한 새드앤딩을 떠오르게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그러나 거리의 발걸음들. 달싹이는 숨소리들. 불이 켜지고, 꺼지고, 달이 뜨고, 공기가 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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