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영 Mar 21. 2024

가볍게

2013년 8월 기록

열다섯 살 Germinoma 환자가 오늘 V-P shunt 수술을 받았다. 수두증이 점점 심해지고, 손발 떨림 증상도 점차 더 심해져서 결국 션트 수술을 받았다.


며칠 전 라운딩을 돌면서 그 아이와 좀 더 친해져 보려고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질문을 했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아빠를 닮았는지, 엄마를 닮았는지,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물었었다. 아이는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느냐며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라고 대답해 주었다. 정말이었다.


한창 밖에서 뛰어놀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을 나이에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의 풍경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 아이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다.


오늘 받은 수술은 복강에 션트를 연결한 수술인지라 장 운동이 회복될 때까지 금식을 해야 한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나마 식사 시간에는 희미하게나마 웃던 아이인데, 그 작은 즐거움 마저 빼앗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금식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심통이 났는지 담당 간호사인 나에게도,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에게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과 진단과 수술의 과정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다. 다 큰 성인에게도 힘든 이 과정이 그 아이에게는 얼마나 크고도 무거운 일일까.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아홉 살 짜리 소년 오스카가 표현한 "부츠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그 말처럼.


그렇게 꼭 무거운 부츠를 신고 있는 것 마냥,

너무나 큰 모자를 쓰고 있는 것 마냥

무겁고

버겁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무거운 부츠와 큰 모자를 시원하게 벗겨줄 수 있을까. 아니면 부츠와 모자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스물일곱 먹은 나도 늘 조금이라도 더 가볍고 싶어 안달인데, 그 아이라고 아니할까.


/ 간호사 김가영






*참고
1. Germinoma는 분화가 덜 된 세포로 구성된 악성 뇌종양으로 '배아세포종'이라고 한다.
2. Hydrocephalus (수두증)이란, 뇌종양으로 인해 뇌척수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 뇌실 안의 뇌척수액이 과잉 축적됨으로써 뇌압이 올라간 상태를 말한다.
3. V-P shunt (ventriculoperitoneal shunt, 뇌실복강 단락 혹은 션트) 수술이란, 과잉 축적된 뇌척수액을 배출하기 위해 뇌실에서 복강으로 연결되는 카테터를 삽입하는 수술을 말한다.


이전 09화 엄마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