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안전할까요

by 안태현

지난 출근길의 일입니다. 수없이 오고 가는 출근길에서 저는 항상 똑같은 승차 위치를 고수합니다.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회사로 향하는 출구와 가장 가까운 승차 위치에서 내리려는 목적입니다. 어제도 1호선의 9-2 플랫폼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풍경이 다릅니다. 앞선 지하철이 출발했음에도 스크린 도어가 닫히지 않은 겁니다. 최소한의 안전의 선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바로 옆 승차 위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순간, 저를 선로에 밀어버릴 사람은 없었지만 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스크린 도어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지 싶습니다.


그때는 노란 안전선 뒤에만 서 있으면 모든 게 안전할 것만 같았던 기분이었을 겁니다. 스크린 도어라는 또 다른 안전장치가 마련되면서 너무 안전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의 놀이터와 달라진 지금의 놀이터의 풍경도 비슷했습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에 가까웠습니다. 한 번 떨어지면 탈골은 기본이었던 정글짐과 유격 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기구들이 가득했던 놀이터에서 아무렇지 않게 놀았습니다. 지금의 놀이터들은 다릅니다. 모랫바닥이 아닌 탄성 매트를 깔아뒀고, 혹시나 넘어져 다치지 않게 위험한 놀이 기구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모든 게 다 안전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안전만 추구하다 보면 사람이 약해지는 건 아닐까요. 당장 내 앞에 스크린 도어만 사라져도 안정감이 휘발되는 저를, 과거 정글짐 꼭대기에서 해맑게 웃던 소년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어딘가 부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내 앞에 땅이 갑자기 꺼져버리는 것 아닌가하는 비현실적인 두려움도 가끔 느낍니다. 안전만 고집하니깐 이렇게 사람이 약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충남 당진의 한 공장에서 2톤 무게의 철재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옮기다, 인양 장치인 크램프가 풀리면서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중대재해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는지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매일 산업 현장에서 사고들이 벌어집니다. 안전을 외치지만 안전하지만은 않은 곳이 우리 삶의 주변입니다. 꾸준히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오는 곳에서의 안전이 왜 이렇게 지켜지지 않을까 한탄하면서,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 스크린 도어로 느꼈던 ‘안전제일주의가 인간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의 이런 바람과 대치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삶에 대한 고민은 늘 양면적입니다. 제 생각도 이렇게 충돌하는데 제 생각이 아닌 현실에 벌어지는 일들은 또 얼마나 첨예할까 싶습니다. 삶의 가치를 두고 논하는 토론에서 모두의 의견을 다 청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전해야만 할까’, ‘꼭 안전해야 한다’라는 생각의 충돌 속에서 휘청거리다 번쩍 정신을 차렸습니다. 어찌 보면 안전제일주의가 인간을 약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누군가의 안전을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나의 입장만 고집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안전은 인간을 약하게 만들지 않고, 약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도 결국 누군가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갑자기 전자의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를 약하게 만들었던 건, 결국 타인을 배려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참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내가 더욱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언제나 강자는 약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산업현장에서 갑과 을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정글짐 꼭대기에 있는 사람과 갑자기 땅이 꺼질까 걱정하는 사람의 간극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당장 내가 강자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서는 내가 안전 불감증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안전할까요. 혹시 ‘나는 지금 안전하니깐’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닫히지 않는 스크린 도어처럼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없애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됐든, 삶의 목표를 위협하는 것이 됐든, 한 사람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이 됐든 말입니다. 오늘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잠시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모두가 안전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내봐야겠습니다.

keyword
이전 21화이 감정이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