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로 가득 찬 홀을 상상하며 영업준비를 끝내고 마시는 커피 한잔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해 주지만 다 마실 때까지 들어오는 손님이 없으면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 오늘도 개시 시간이 늦겠네. 상가에 다니는 사람이 없네.’
‘편의점에도 다니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오늘도 일찍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자영업을 시작한 지 2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그렇게 불안한 마음이 들고 그러지는 않는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는 마음으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느낀 지 오래되었는데 그 이유는 꾸준하게 우리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졌고 새로 유입되는 손님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유를 느끼며 손님맞이에 한참이던 늦은 시간에 내 눈과 귀를 의심하는 일이 발생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11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무능함과 추악한 스캔들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리더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일이 발생하며 홀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어… 뭐야? 비상계엄?”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비상계엄이 뭐래.”
“사장님. 티브 볼륨 좀 올려 주실래요? 좀 더 들어보게. “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동시에 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계엄이냐… 진짜 헐이다. 쯧쯧. “
”박정희 전두환 때도 아니고…“
”전쟁이라도 났다면 모를까 지금 경제도 어려운 시기에 계엄이라니…“
손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잠시 후 국회에서 의결된 계엄해제 소식에 모두 환호하며 편안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이후 대한민국은 어두운 터널에 갇혀버렸고 새로운 리더가 뽑히기까지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영업자들에겐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어 버렸다.
“어이 전사장. 요즘 좀 어때?”
예전 해외 사업을 함께 할 때 상사로 모시던 사장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긴요. 간신히 버티고 있죠.”
“다들 어렵다던데 괜찮은가 해서 전화했네.”
“많이 어렵죠. 매출도 많이 떨어지고 했는데…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내 조만간 시간 내서 소주 한잔 하러 갈게. 그때까지 힘내서 잘 지내고 있게.”
“언제든 편한 시간에 한번 오세요.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시간 동안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의 격려 메시지에 힘을 얻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고정손님과 단골로 명맥을 유지하던 우리 가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정으로 찾아오던 단체손님들이 제일 먼저 줄었다.
단체 손님들은 종교단체, 통기타 동호회, 학부모 모임, 골프 동호회, 배드민턴 동호회, 주민 모임, 그리고 문화원 회원 등 다양한 모임을 우리 가게에서 했었고 객단가가 상대적으로 크고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운 손님들이었지만 모임의 횟수가 80프로 이상 줄어버렸고 자주 보이던 단골손님들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여보. 요새 밤일마을 팀들이 안 오시네?”
“그러게. 안 온 지 5개월 다되어가는데…”
”다들 어려운 상황이라 모임을 많이 안 하나 봐. “
”뭔가 상황이 있겠지. 다들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라 예전처럼 흥청망청 할 수 없겠지. “
영업 준비를 마치고 커피 한잔 마시며 나누는 우리 부부의 관심사는 단골손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한가인을 얘기하던 학부모도 그렇고 하이볼을 혼자서 10잔 이상 마시며 흥겨워하던 의류 사장님의 안부도 궁금해졌다.
“다들 이사를 간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몇 달째 얼굴이 안 보이니…”
“이사 갈 수도 있고 모임의 리더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다들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단골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간신히 버티던 즈음에 무능과 스캔들로 점철된 리더가 파면되어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누가 다시 리더가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당연하지. 이보다 무능하지는 않겠지.”
모두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한동안 없었던 단체 모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주 긍정적인 신호라 판단하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리더가 국민들에 의해 선택되었고 분열을 끝내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에 충분했다.
“어이 대박집 사장님. 이제 살림 좀 나아지겠지?”
“대박은 개뿔 개뿔. 새로운 리더가 뽑혔으니 나아지겠죠. 하하하.”
“그러게. 공약대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소상공인들 지원도 해준다고 하니 기대해 봐야지. 돈이 돌아야 우리도 살지. 안 그래?”
“맞죠. 돈이 돌아야 숨통이 트이죠. 잘할 겁니다.”
”나도 이제 정치적인 성향이 바뀌었어. 그동안 의리로 찍어줬는데 이제는 그런 후회가 안 들도록 신중하게 찍어야겠어. “
”오… 새로운 리더가 우리 박사장님 정치적인 성향까지 변하게 만들었네요. 대단하네요. 하하하. “
겨울연가 박사장님도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는 걸 보면 파면당한 리더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게 정상이 되고 가게 경제에 숨통이 트이면 단골손님들과 그동안 한 번이라도 우리 가게를 찾았던 모든 손님들이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외치기를 바란다.
“나 다시 그곳에 돌아가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마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