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청춘이 매력적인 근본은, 남아도는 체력에 있다.
무언가를 좋아할 체력,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 체력,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좌절할 체력,
그 와중에 친구가 부르면 나가 놀 체력,
그래놓고 나는 쓰레기라며 자책할 체력.
유한한 체력을 중요한 일들에 신경 써서
분배할 필요가 없는 시절,
감정도 체력이란 걸 모르던 시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아파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우정은 언제나 과했고,
사랑은 속수무책이었으며, 좌절은 뜨거웠다.
불안과 한숨으로 얼룩지더라도, 속절없이 반짝였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기획의도 중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낭만에 대해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 나는 '굳이 하는 것들' 이라 답했다.
굳이 바다를 보러 간다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금방 갈 길을
예쁜 풍경을 보려 굳이 걸어간다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꽃을 사는 것.
내게 낭만이란 '굳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사랑과 낭만은 언제나 우리에게 필수조건이 아닌 옵션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굳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은 사랑을 생기있게 한다.
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너는 실없는 농담을 하고,
바쁜 등교 시간을 짬내어 만들었을 햄치즈 토스트와 딸기우유를 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어.
주인 없는 별을 보며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마음 속에서 데굴데굴 굴리다가
달이 예쁘다는 핑계로 너의 집 앞에 무작정 찾아가던 날들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해, 전하고 싶어 대바늘과 실을 들고
새벽이 다 가도록 서툰 손짓으로 목도리를 뜨던 날이 있었지.
우리의 청춘에는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한다는 계산이 없었다.
친구와 싸울 때도 온 마음을 다했고,
사춘기 치기 어린 반항에는 활활 타오르던 마음이 있었으며,
첫사랑은 속절없이 찾아와 혼을 쏙 빼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했다.
모든 일에 쏟고 쏟아도 마음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늘 새로이 샘솟았다.
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는 것에 망설이게 되었다.
눈이 반짝거리던 아이가 무던한 사람이 되기까지 변한 건 낡아진 마음 때문일까
손때를 묻히며 모서리를 잃도록 둥글리는 세상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더 이상 덜 중요한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체력의 소진 때문일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청춘을 살고 있다.
찰나의 낭만을 붙잡고 여전히 비효율적인 일들을 해나아가고,
때로는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쫓으며
새벽녘 침대에 기대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글을 쓰고 있다.
지금보다 어린 날 서툴어 빛났던 그 날의 하늘도,
그때보다 조금 더 자란 오늘의 하늘도, 이 바람도, 이 햇빛도, 모두 한 번 뿐.
한 번뿐인 오늘의 청춘을 굳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누리며 천천히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