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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여정 Sep 03. 2023

유방암 수술 일지

나의 모든 날, 모든 순간

2020년 10월 12일 충남대학병원에 입원하였고 다음날 오전 8시경 수술실로 들어갔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추위에 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정신을 차렸다. 너무너무 추워 어금니가 절로 딱딱거렸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몹시 힘들었는데 나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 추워요,를 연신 외쳤다. 수술한 왼쪽 가슴에서는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왠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뜬 게 맞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담당의께 감사했고 주치의께 감사했다. 간호사분들께 감사했고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다.



약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온전히 차려지지 않았다. 몸이 너무 추워 심장까지 쪼그라드는 듯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비몽사몽 눈이 자꾸 감겼다. 그런 나를 담당 간호사가 흔들어 깨웠다.


- 폐가 쪼그라들고 있으니 잠들지 말고 심호흡에 신경 쓰셔야 해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열심히 반복했다.






무통주사 덕분인지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왼쪽 가슴에서는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고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첫날은 소변줄을 꽂고 있는데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되니 이 부분이 참으로 편하였다. 처음에는 좀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차츰 소변줄을 꽂고 있는지 조차 잊을 정도로 익숙해져 갔다.


배액관은 수술 후 약 5~6일 정도를 달고 있었다. 수술한 부위에 피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하는 게 처음에는 무척 불편했으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것 또한 점점 익숙해져 갔다. 주변에서는 피가 너무 많이 나와서 혹은 너무 적게 나와서 손으로 눌러 짜기도 하며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나는 다행히 별 문제가 없었다.


수술부위의 실밥은 4일째 되는 날 제거했고 나는 이런저런 통증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가 없이 혼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샤워를 하지 못했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혼자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없어졌을 가슴을 아직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분들은 수술 바로 다음 날 또는 다다음날에 샤워를 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불편하게 씻느니 며칠 더 참는 것을 택했다. 불편함이 찝찝함을 이겼고 그리고 심지어 나는 그다지 찝찝하지도 않았다.   




병원 밥은 그럭저럭 맛있었다. 남이 차려주는 밥인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뒤돌아서면 다시 또 밥시간이었고 이렇게 몇 달간 병원생활을 하게 되면 토실토실 살이 안 찔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주식이 커피였던 나인지라 너무나도 커피가 간절했다. 2층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 들러 라테 한잔을 사 왔다. 같은 병실을 쓰는 분도 커피를 사랑한다기에 한 잔 사다 드렸다. 겨우 2~3일 만에 먹는 커피였지만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카페인 중독이 맞았다. 라테 한 모금에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 커피 한 잔의 행복감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 아주 조금씩, 참으로 오랫동안 아껴 먹었던 것 같다.   





암치료를 위함이지만 나는 병원생활에 벌써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책임감이든 의무감이든 환자라는 신분을 핑계로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무언가에 쫓기듯 매일이 불안했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이 없을 것 같았으나 나는 오늘 일하지 않았는데도 내일이 찾아왔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다시 또 오늘이 되며 시간은 계속해서 내게 머물렀다.


이 얼마나 고요한 일상이란 말인가. 내게도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있을 수 있다니... 병원이 아닌 다른 멋진 곳이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테지만, 비록 암환자로서 입원해 있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꽤 큰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아들이 있고 당연히 삶의 0순위였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병원은 내게 자유를 선사했으니 일탈감이 느껴져 흥분이 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눈 뜨고 싶을 때 그리해도 되는 자유가 무척이나 소중했다. 


그러나 끼니때마다 어김없이 전화를 는 아들로 인해  자유는 매번 길지 않긴 했다. 더욱이 음식에 진심인 아들이었으므로, 매번 다른 음식을 요구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을 방치한 것을 빌미로 아들은 그간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모조리 먹어치울 작정인 듯했다. 정해진 그 시간에 밥을 먹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아들이 가끔 야속하기도 하였으나 내가 그리 키웠으니 나를 탓해야겠지...


한창 클 나이답게 아들의 식성은 감당이 안 될 정도이긴 했다. 내 병원비보다 아들의 식대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통장 잔고는 빠른 속도로 줄어 갔다.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는 원격수업을 시행하였고 아들은 집에서 하루 세끼를 배달음식으로 때우며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니면 아들 또한 내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 동안 더없는 자유를 느끼며 행복감을 느꼈을는지도. 부디 전자이기를 기대해 본다.




***************




입원한 지 7일째 되는 날에 퇴원을 했다. 택시에 일주일간의 병원 생활을 청산할 짐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보는 바깥세상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집이 이처럼 반갑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 뭉클함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바로 깨져 버렸다. 돼지우리란 이런 곳을 에둘러 말하는 걸 거다.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욕실 앞에는 수건 등의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 포리의 털을 비롯하여 배설물 등이 곳곳에 굳어 있었다. 포리는 나를 보자마자 격하게 달려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지만 내 모든 신경은 집안 모습에 향했다. 집안이 무슨 구름 위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웰시코기답게 어마어마한 털의 양이 온 집안에 그득했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거실을 구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리라. 일주일여 만에 나를 보자 신이 났는지 크지도 않은 집안에서 질주를 시작한 포리 때문에 집은 점점 더 쑥대밭이 되어갔고 나는 차마 집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수 초 동안을 신발장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은 원격수업 중이라는 이유로 방문을 잠근 채 내게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



정신없이 집을 정리하고 드디어 샤워를 하려 욕실에 들어갔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찝찝함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끈적끈적함을 물로 씻어내고 아직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도 두 번이나 감았다. 조금이나마 깨끗해진 집처럼 나 또한 조금이나마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밴드로 교체를 위해 수술 부위 테이프를 제거했다. 그 테이프를 벗겨 내면 수술 흉터를 바로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왠지 긴장이 됐다. 궁금했지만 선뜻 마주할 용기가 바로 나지는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거울 앞에 섰다. 테이프를 벗겨낼수록 드러나는 수술 부위에 솔직히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방암 카페 블로그에 올라온 여러 수술 흉터와는 너무 달랐다. 내 피부이지만 너무 징그러워서 눈물이 왈칵 났다. 구불구불 뱀 한 마리가 박제된 듯했다. 흉측해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흉터는 아물어 점점 옅어질 것이므로 나는 이렇게라도 수술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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