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風船)_4/4
"배를 다시 내만으로 돌려라!"
김소장이 결국 고집을 꺾었다.
'너울/큰 파도'가 첩 태산같이 닥쳐오고 있는 판국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선조차도 시야에서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원체 큰 파도로 해서 기선과 풍선을 잇는 끌줄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한 그 시점에 어창의 뚜껑이 열렸던 것이다.
파도가 거세지면서 각 배의 어창에 구겨져 있듯이 실려서 가던 군경 가족들 중에 아이들의 어미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모두 물 구신으로 만들라고 그라시요?"
파도가 심해지면서 어창에서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이 배 저 배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일부는 뱃멀미를 하면서 토를 심하게 해 댔고 어린아이들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들이 일시에 어둔 어창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어미들이 어창 바깥으로 하나둘씩 나오더니 김소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조타실에 있는 김소장을 찾아와 나무라듯이 그랬다.
"전황이 불리해져서 저놈들 총칼에 죽더래도 이 나라에서 죽어야제 어디로 간단 말이요"
" 다시 배를 돌립시다. 돌아 가십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요 하지만 물구신은 되기 싫소. 얼릉 배를 돌리라고 하씨요!"
어미들이 여럿 몰려와 대들듯이 김소장에게 배를 얼른 돌리자고 설득을 했다.
뱃멀미를 하는 통에 토을 해대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서도 눈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을 품어대고 있었다.
"배를 돌려라 사량도로 돌아간다."
결국은 김소장이 바깥 바다로 나서자고 한 고집을 접었다.
하지만 기선은 이미 내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만 각 풍선에서 키를 잡고 있는 선장들만이 배는 이미 크게 선회를 해서 사량도 바깥섬을 벗어나자마자 삼천포항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삼천포로 들어가는 중이요"
내가 김소장에게 그랬다. 아직까지도 김소장은 배가 삼천포항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성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배는 선회를 해서 내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다.
김소장은 진즉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하고 있었지도 몰랐다.
경찰로 잔뼈가 굵었다는 김소장이 어찌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않았으랴. 어찌 섬이 오른쪽에 있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랴. 다만 이 판국에 어느 배 하나 잘못되었다가는 자신이 책임지고 안전하게 피난을 시켜 주어야 하는 군경가족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형국이어서 짐짓 모른 채 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리라.
김소장은 누구의 명이었느냐, 누가 맘대로 돌렸느냐는 따지지를 않았다. 어쩌면 자신도 진즉 돌리고자 했을지도 몰랐다.
바다가 이미 거칠대로 거칠어진 판국에 더 이상 난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모두가 물귀신이 되는 것이 불을 보는 듯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선은 용케도 물속 바위가 몰려 있는 대호도 근방을 비켜서 지나고 나란여, 물숭여가 많은 화도 잠도를 어둠 속에서 뒤로 떠나보내자 저 멀리서 삼천포항의 불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꼬노리/까나리'를 잡으며 부르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동생이었다.
이노세 이노세 멸 잡아 이노세
에헤라 둥 에헤라 둥
여노세 여노세 멸 잡아 여노세
에헤라 둥 에헤라 둥
꼬노리는 제치 놓고 참새비는 여치 놓고
이노세 이노세
에헤라 둥 에헤헤라 둥둥
참멸치 물칸 담고 개멸치 통칸 담고
여노세 여노세
에헤라 둥 에헤헤라 둥덩 에헤라 둥덩
초들물이 들어오네 물 때가 끝나가네
서두르세 서두르세
에헤라 여노라 둥둥둥
에헤라 여노라 둥덩덩 궁덩
언제 다시 기선으로부터 건너온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기선으로 건너가지 않고 어디 처박혀 한숨 자고 나온 것인지 어둠 속에서 하얀 웃음을 물고 노랫가락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는 이들만 내려주고 쑥섬으로 돌아갈 일만 생각하면 되었다.
삼천포 항의 불빛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풍선
돌아왔으니 되었다
생목숨들 살려서 퍼 주고 오면 되었다
꿈만 같은 세월들 지나고서야
살아남은 목숨들 어디서 다들 잘 살고 있겄지
잘 나가다가 삼천포라고
대마도로 가자고 난바다로 가는 길에
용왕님이 막아섰제
짠짠구 짠짠구 첩 태산 너울로
샛바람 가득 채워
용왕님이 돌려 세웠제
생때같은 목숨들 모두 모두 뭍으로 내려주고
빈 배로 돌아오는 길
너른 돛폭을 펼치고
멸잡이 타령 부르며 순풍을 받아 돌아오던
거친 바다 거친 세월
살아왔으니 되었다
<풍선을 마치며>
대마도로 향하자고 해서 사량도 바깥섬 쪽으로 선수를 돌려 나아가던 것을
악천후를 만나 다시 어둔 밤에 사량도로 회항을 하여서 삼천포 인근에
아흔아홉 명의 목숨들을 뭍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돛을 펼쳐서 되돌아오는
길에 불렀다던 멸잡이 타령까지가 저가 당시에 써놓은 글과 기억에 의존하여
아버님의 '풍선'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묵혀지고 있을 아버님의 글 속에는 그 이상의 히스토리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우선 이번에는 여기까지 진전을 시켜놓고 나중에 좀 더 완성도를
높여 보고자 합니다.
아직 싣지 못한 글 속에는 배를 돌려서 오는 중에 어창에 남아있던 상자 속에
여러 무기들을 확인하고 이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여수에서 나로도로
건너오는 '봇도리 바닥'에서 바로 나로도로 진입하지 못하고 내나로도 안쪽으로
뱃길을 돌려서 어느 해안가에 파묻고 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나중에
기록이 찾아지면 좀 더 세밀하게 포함을 시켜볼 작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쑥섬 돌부처
명재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