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가는 길

단편소설

by nEvergreen

프롤로그 세상에서 소외받고 외면받는 약자. 천대와 멸시 속에서 매일 구걸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맹인. 삶이란 오직 저주와 절망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구원의 메시지. 그러나 그 희망의 길에 가로 놓인 수많은 장애와 포기의 유혹. 신약 요한복음 9장의 나면서부터 장님인 인물의 실로암으로 가는 길을 그린 단편소설.


이마에 무언가가 끈적끈적하고 미지근했다가 차가워지면서 흘러내린다. 지금까지 딱딱한 돌멩이들로 맞은 터라 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 까?’

이 길은 무척 낯설다. 나에겐 지극히 단조롭고 익숙한 생활 영역과 반경이 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낯설고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전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어느 때인가 이 길의 근방을 지나쳤을 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길. 생애 처음으로 구걸 이외의 목적이 있는 낯선 길을 걷고 있다. 오직 지팡이 하나만을 가진채.


“야 저 놈 눈 위에 뭐를 붙이고 있네! 하하하”, “ 뭐가 묻었는지도 모르는 거 아냐? 하하하", “병신지랄하는 거 아냐?"

‘나는 놀림과 조롱에 익숙하다. 그렇게 수십 년을 이제 큰 어른이 되었고 곧 죽을 수도 있는 나이에 이르도록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더 유난해진 이 조롱이 너무 힘들다.

서글프고 이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


해는 뜨겁고, 길을 물어가며 걷는 것도 너무 벅차다. 불구인 나에게 가까이 와 주기는커녕 멀리 나를 피해 길을 옮기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 번 돌부리,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고,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러 번 넘어져 무릎이 깨져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겨우 한 시간 정도를 걸었는 데 마치 온 하루를 지내 온 느낌이다.


'포기할까, 왜 이렇게 고생이지? ‘아니면 어쩌지? 아니면 어쩌지.... 아니면...?'

‘그 사람은 정말 메시아일까? 하나님의 아들이 맞을까? 아니면… 그저 말주변이 뛰어난 사기꾼?...'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외에 나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아 왔어야 했으므로, 참으로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그것이 더 괴롭고 힘들게 하고 있다.


많은 기적의 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을 통해 병이 낫고, 귀머거리가 다시 듣게 되고, 귀신이 쫓겨가고, 눈먼 자가 눈을 뜬다는 그 많은 소리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다 지어낸 것이 아닐까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마저 들어서고 있다.


그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고자 많은 기대를 갖고 나갔다. 정말 내가 볼 수 있다면, 눈을 뜰 수 있다면, 나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 모든 것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가졌다.

그런데, 막상 이 사람에게서 나가니, 눈을 뜨게 해 주기는커녕 진흙에 자신의 침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서 씻으라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내 눈을 뜨게 할 수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수 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 여기서 그만 가자라는 수 만 가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상하고 나답지 않은 확신이 마음속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고쳐지리라!’

수많은 결핍과 좌절 속에 포기에 익숙한 나에게 그것은 다른 이가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왜 나에게 바로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안 행하고, 이렇게 수모의 길을 걷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안수로 바로 눈이 떠지고, 말을 하게 되고, 피부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들어왔다. 그런데 하필 왜 나한테만…’

그러다 잠시 다른 생각 하나가 마음을 때린다.

‘그런데 하필 왜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그가 만약 유대지방 아닌 다른 데서 태어나 일하였다면…?’

그때, 누군가 나를 아는 체하는 것을 들었다.


“어? 자네 미문(the Beautiful Gate)의 장님 아니야?”

사람들은 나에게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는다. 심지어 태어난 동네의 누구라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내가 자주 구걸하는 미문이라는 성문의 눈먼이로만 알고 있고 그렇게 부른다.

익숙한 목소리가 분명 그 자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벳세이다의 유다”라 하는 자였다. 그는 반갑기는커녕 피하고 싶은 존재다. 얼마 전 겨우 구걸해서 얻은 얼마를 이 놈이 나도 모르게 얼마를 훔쳐간 것을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알았다. 그는 결코 나를 선대해 줄 사람이 아니다.

모른 체 하고 싶었지만, 내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 있나.

그는 숨길 수 없는 헛웃음과 조롱으로 물든 목소리로 어딜 가냐고 물었다. 왜 성전 앞에서 시전거리 앞에 안 가고 이 길을 가냐고.


나는 무시했다. 그것이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는 길이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로암 가는 길이 이 길이 맞냐?“라고 묻게 됨은 더 많은 나쁜 일들의 단초를 제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할 일이 없나 보다. 오늘은 그에게 나는 아주 좋은 시간 때우기와 장난의 대상이었다.

그는 계속 따라오며 말을 걸고, 욕을 하고,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때론 참기 어려운 고통이 나뭇가지 끝에서 전해 옴을 느꼈지만, 나는 나의 길을 숨겨야 했다.

어쨌든 나를 가지고 놀던 그가 더 이상 재미를 못 얻을 것 같으니 이내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나에게 밤은 큰 의미가 없다. 내가 해가 기울어 밤에 집에 들어가도 부모는 그저 자신들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나를 찾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들을 걱정케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그렇게 낮과 밤이 없는, 그러면서 일 함과 쉼이 있는, 기쁨과 슬픔이 있는, 긴장과 여유가 있는, 감동과 평범이 있는 그런 평범의 삶이 없이 그저 모든 게 밤 같고, 모든 게 단조로운 나 만의 세계를 살아왔다.


지나가는 한 무리의 마병들을 피하려다 옆 사람을 건들었을 때, 엄청 심하게 얻어맞아 온몸이 화끈거렸다.

“너 때문에 부정해졌잖아!”.

나는 내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하면서 결코 단순히 접촉만 한다고 율법에서말하는 것처럼 다른 이를 부정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를 받을려치면 엄청 예민하고 과민반응을 보이며 지극히 방어적으로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러한 억울함의 또 다른 대상이 되어왔다.

나귀의 발길질에 차여 왼쪽 허벅지가 엄청 아프고 거의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다. 이 길은 예루살렘 성문으로 직통하는 길이라 사람이며 수레, 말, 나귀들이 많이 왕래한다. 조심하지만, 미처 나귀가 내 옆 가까이 지나감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귀도 본능적으로 옆에 다른 이들과 달리 오래 그 곁을 지나가는 나를 경계했었으리라.

입에 모래알이 씹혔다. 코에 먼지가 많이 들어갔고 목이 칼칼했다.

이 길은 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거의 죽음의 길이다.

그렇게 땀과 먼지와 그리고, 그리고 나도 언제인지 모르게 흐르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돼 가며 걸어간다. 눈에 붙여진 진흙 반죽은 어느새 마르고 딱딱해져 눈꺼풀을 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기약 없이 걷고 걷고 넘어지고 넘어지며 걸었다.

...

눈앞에 반짝이는 조그만 점들이 보였다. 이게 뭐지 하며 손을 물에 넣어 잡아보려 하지만, 물결의 파장과 함께 어그러지며 흩뿌려진다. 재빨리 눈을 들어 앞을 보고 옆을 보고 위를 쳐다보았다. 주위가 조용하고 건물의 웅장한 기둥이 연한 잿빛을 띠며 눈에 들어오고, 하늘 위에는 하늘 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박혀 있었다. 너무 많고 가까워 나는 손을 뻗쳐 잡으려 했다.

그 사람을 만났던 것이 정오쯤이었는데, 나는 여기에 이제야 도착했다. 누군가 내가 있었던 곳에서 약 24 스타디아 (약 4km) 떨어진 곳에 이곳 실로암이 있다고 했다. 성인남성 한 시간 정도의 거리다.


얼굴을 샘물에 씻는데 눈물이 마구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고인 많은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자, 다시 눈이 멀까 봐 두려움에 눈물을 입안에 침을 삼켜 넣듯 눈 안으로 삼키려 했다.

나는 오늘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새로운 것”들로 인해 잠을 못 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어둠이 싫고 눈을 감는 것이 싫다.


무릎과 옆구리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데… 더 이상 더 깊이 더 아프게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상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이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 덕지덕지 피딱지와 흙으로 짓이겨진 상처들은 밤임에도 그 자리를 또렷하게 지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두렵지 않다. 나는 내 손으로 이것들을 치료할 것이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처로 두려움을 더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이의 손으로 나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일 당장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있음을 깨닫고 다짐한다.

‘내일 당장 그를 찾아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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