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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Feb 20. 2021

[번역활동 1년째] 19세기 프랑스에서 한국이 보인다

에밀 졸라의 <Pot Luck>을 기획하면서

율리시스 그랜트의 회고록을 기획한 지 대략 3주가 지난 지금, 에밀 졸라의 <Pot Luck> 번역기획서가 완성되었다. 원래 출판사에 먼저 제출해야 하지만... 또 퇴짜 맞을까 봐 두려운 탓인지, 저번 하고 똑같은 양식이면 지겨워서 그런 것인지 이번에는 출판사에 내기 전에 글을 쓰게 되었다. 프랑스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했기 때문에 기획할 때 고생을 좀 했다. 19세기 프랑스 역사는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왜 난 어릴 때 제정시대를 공부하지 않았을까 후회되었지만, 막상 공부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시대이다. 




프랑스 제2제정시대의 명과 암

<Pot Luck(프랑스어: Pot-bouille, 이하 Pot Luck)>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10번째 작품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루공, 마카르 집안을 중심으로 프랑스 제2제정 시대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연작소설로, 총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공, 마카르 집안의 후손 옥타브 무레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무레의 집안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당시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잠깐 알아두면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가끔 뒤베리에 같은 남정네들이 정치 얘기를 나불대는 걸 볼 수 있다. 얘네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들으려면 역사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제2제정은 루이 나폴레옹이 1852년에 황제 나폴레옹 3세로 즉위로 시작해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 3세가 퇴위로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 3세는 형식상으로만 국민 투표를 유지하고 사실상 황제가 모든 권력을 거머쥔 독재정치를 펼쳤다. 대신, 상공업을 장려하고 해외 식민지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경제를 발전시켰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진행해 노동자들에게 일터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파리 시를 개조하고 만국 박람회를 2번이나 개최해서 프랑스를 명실상부한 관광 국가로 발돋움시켰다. 하지만 화려한 파리의 변두리에는 빈곤한 노동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산업 발전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그의 주위는 대부분 거물급 은행가나 철도 건설업자 같은 자본가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자본가들의 성(性)과 돈에 대한 탐욕은 극으로 치달았다. 


<Pot Luck>은 혼란스러웠던 19세기 프랑스의 자본가, 즉 상류층 부르주아를 다룬 작품이다. 겉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부르주아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불륜·주색·노름·허영심·히스테리로 얼룩진 삶을 산다. 이들의 위선은 어떻게 묘사될까?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초상화(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높으신 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나라에는 재벌이나 상류층을 다룬 드라마가 참 많다. 정작 드라마 보는 재벌은 0.01%도 안 될 것 같은데, 다들 대리만족을 하려고 보는 걸까. 아니면 욕하려고 보는 걸까. 내 생각엔 후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JTBC에서 방송했던 <품위있는 그녀>, <SKY캐슬>, SBS의 <펜트하우스> 모두 상류층을 은근히 비판(?)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참 신기하게도, 세 드라마에 있는 상류층의 모습이 <Pot Luck>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 드라마 중 첫 번째로 시작한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와  <Pot Luck>의 공통점은 야망이다. <품위있는 그녀>의 주인공 박복자는 고아원 출신의 하류층이지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회장을 사로잡아 부잣집의 안주인이 된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박복자와 출세를 위해 여러 여자들을 거치는 옥타브의 모습이 꽤 흡사하다(그러고 보니 옥타브도 백화점의 여주인 에두앵 부인과 혼인을 하니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또한 이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악인이 악인을 물리치는 피카레스크 장르가 생각난다. 회장을 속여서 집안을 거덜 낸 박복자, 유부녀와의 불륜으로 부부관계를 파탄으로 이끈 옥타브 모두 선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들 덕분에 상류층 가족들이 난리 나는 장면이 참 재미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드라마 <SKY캐슬>과  <Pot Luck>의 공통점은 체면이다. <Pot Luck>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베르트와 조스랑 부인이다. 조스랑 부인은 하녀가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돈을 아끼지만,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드레스 치장과 파티에 돈을 펑펑 쓴다. 딸 베르트는 20수가 있으면 40수가 있는 척하고, 동정받는 것보다 부러움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거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보험에 든 척하면서 남편과 혼인을 한다. <SKY캐슬>의 주인공 한서진도 공식적으로 은행장 부모님을 두고 시드니 대학교를 나온 금수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거짓으로, 실제로는 선지 파는 주정뱅이의 딸 곽미향이다. 이들은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까지 가난을 숨기고 신분 상승을 하려 했다. 결국, 이들 모두 자신의 진짜 모습이 밝혀지게 된다.


세 번째 드라마 <펜트하우스>와  <Pot Luck>의 공통점은 불륜이다. <Pot Luck>의 옥타브는 쥘제르 부인, 발레리, 마리, 베르트 등의 여자와 사귀며 출세의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여성 편력은 남편들에게 분노를 사기도 했다. 성당에서 오귀스트와 베르트가 엄숙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중에 테오필이 아내 발레리의 부정을 추적하기 위해 옥타브에게 소리치는 모습, 아내 베르트의 불륜 소식을 듣고 화가 난 오귀스트가 옥타브에게 달려들다가 힘센 옥타브에게 바로 굴복하는 모습이 볼만하다. <펜트하우스>의 천서진도 유부녀이지만 주단태와 불륜을 저지르니,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에게 불륜은 필수 코스 같다.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좌), <SKY캐슬>의 한서진(중), <펜트하우스>의 천서진(우) (출처: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따뜻한 게 좋지 않아?

막장이 즐비한 드라마와 달리 문학의 경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아몬드>, <소년과 개> 같은 따뜻한 작품들이 교보문고 매대를 채우고 있다. 막장에 질린 탓일까. 다들 머리를 식히고 싶은가 보다. 그러면, 후속작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프랑스어: Au bonheur des dames)>을 먼저 읽은 뒤 <Pot Luck>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옥타브가 에두앵 부인과 혼인한 후 어떻게 되었을까? 에두앵 부인이 죽고 백화점 사장이 된 무레는 점원 드니즈 보뒤와 이어진다. 자극적인 막장물을 보기 전에 두 사람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머리를 식히는 것은 어떨까(다만, <Pot luck>에서 옥타브와 에두앵과의 관계가 끝부분에서야 나오는 게 좀 아쉽다. 베르트와 불륜하는 걸 좀 줄이지;;;). 




다음 편에서는 원문의 번역 과정을 잠깐 공개하겠다. 일개 번역가 지망생이니 실력은 변변치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는 지식보다 번역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번역하려고 노력했으니 잘 부탁드린다.



<사진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52088&cid=56790&categoryId=56791

https://tv.jtbc.joins.com/dignity

https://tv.jtbc.joins.com/skycastle

https://programs.sbs.co.kr/drama/penthouse/main


*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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