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어스코리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행동경제학 파트 번역하는 과정을 말끔히 삭제한 후,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원고 하나를 구했다. 그런데 원고를 번역하기 전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오역에 대한 두려움이다. 출판사에서 내가 기획한 책을 마음에 들어도, 내 번역 실력이 부족하면 출판사에서 내게 선뜻 번역을 맡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번역하기 전에, 작년에 번역했던 과정을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한겨레에서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카페에서 번역활동을 한 후 남에게 처음으로 내 번역 실력을 선보이던 때를(조인어스코리아에서 봉사 리뷰글을 올려도 될지 문의했다. 모두에게 공개된 자료라서 올려도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행이었다).
어렵고도 복잡한 문을 통과해야 한다
카페에서 번역활동을 하고, 밀알복지재단에서 편지 번역 봉사를 마친 후, 조인어스코리아라는 NGO 단체에 가입했다. 작년 11월 말에 1365에서 번역 봉사 관련된 내용을 찾다가 이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번역 경력을 쌓으려는 목적으로 이 단체에 가입하려 했으나... 가입 인사부터 복잡하다. 가입 인사를 쓰려면 아래의 8개 질문을 채워야 하는데 질문의 내용이 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영화, 롤모델, 좌우명 같은 질문은 다른 카페에서도 흔히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가' 같은 질문은... 뭐라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계속 머리를 싸매다가, 눈치 없다고 구박받던 옛날 내 모습이 떠올랐던 탓일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고 답해버렸다(그런데 막상 이런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사가 지금 퇴근하라고 해서 짐 쌌다가, 상사의 속마음을 읽어버리면...)
가입인사를 쓰고 끝이 아니다. 다른 회원들에게도 인사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가입 인사에 가서 댓글을 남겨주었다. 이제 끝일까? 아니다! 소개서를 작성한 후 연회비를 내야 한다. 연회비는 1년에 6만 원.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6만 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갈등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다른 봉사단체가 활동을 중단하거나, 미뤄진 상태였다(번역하려면 해외아동 대상으로 편지 봉사를 해야 하는데 애초 비행기를 탈 수가 없으니까 편지가 전달될 리가 없다). 결국 이 단체가 어떤 곳인지 조사했다. 다행히, 홈페이지도 갖추고 신문에도 자주 등장하는 NGO 단체였다. 네이버, 구글을 샅샅이 뒤졌다. 멀쩡히 활동하는 단체 같았다(이단 같은 게 아니란 뜻이다). 이렇게 활동하기로 마음먹고, 소개서 작성 후 연회비를 냈다. 어렵고도 복잡한 가입 과정을 거친 뒤 기다리면 정회원으로 승인되었다는 메일을 받는다. 이 메일을 받으면, 본격적으로 조인어스코리아에서 봉사활동할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6차 FAQ 번역 봉사활동'이라는 글에 들어가서 댓글을 남긴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봉사활동의 경우 미리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을 한 후 활동보고서를 써서 승인받는 제도이다. 즉,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글로 틀을 잡기
'6차 FAQ 번역 봉사활동'이란 외국인이 관심 가질 법한 주제 30개를 선정한 뒤 답 3개를 찾아서 best라고 명시하는 작업이다. 외국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관광 명소를 다루고 싶다면, 관광 명소 중 어떤 곳을 소개하고 싶은지 그 주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눈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고 싶다면, '한국에서 아름다운 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라고 주제를 정한 후 베스트(best) 장소 3곳을 선정하는 것이다. 한옥마을을 소개하고 싶다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옥마을 best 3'라고 주제를 정하고 베스트 한옥마을 3곳을 소개하면 된다. 소개할 때, 단답형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답 1개 당 한 단락은 써야 한다. 출처 명시도 필수이다. 또, 주제는 세부적으로 설정해 주는 게 좋다.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한국 소설이라고 명시하거나, 에티켓의 경우도 여행, 식사, 직장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한국 소설의 경우 <채식주의자>를 소개하려다가, 명성에 비해 그다지 감동적인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른 소설을 대신 소개했다).
알아서 영작해주는 똑똑한 파파고
'6차 FAQ 번역 봉사활동'을 할 때 규칙이 하나 있다. 문서를 만들 때 한글과 영어 문서 둘 다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왜냐하면 조인어스코리아 홈페이지의 경우, 영미권 국가 사람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한글 문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한글로 문서를 만든 후, 영작을 했다. 영작 실력이 다소 부족한 터라, 파파고의 도움을 빌렸다(출판 영작을 할 때는 파파고를 쓰면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건 기술 영작이다). 파파고는 번역은 미숙하지만, 영작에는 꽤 실력을 발휘한다. 똑똑한 파파고는 문장을 알아서 영작해준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 전문 인터넷 쇼핑몰로, 주로 도서류를 판매하지만, 음반, DVD, 화장품, 선물류 및 영화 티켓 같이 다른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라는 문장은 'It is the oldest book shopping mall in Korea that mainly sells books, but also sells other products such as records, DVDs, cosmetics, gifts and movie tickets.'으로 영작해준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 the oldest book shopping mall in Korea'로, '주로 도서류를 판매한다'는 'mainly sells books'로, '음반, DVD, 화장품, 선물류 및 영화 티켓 같이'는 'such as records, DVDs, cosmetics, gifts and movie tickets'로 영작했다.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다르다는 것을 파파고도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한옥에 기와가 가득해?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파파고에게도 단점이 있다. 기계라서 그럴까. 단어-단어의 대응만 기계적으로 암기한 탓에, 비유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옥마을을 다룰 때 북촌마을 파트에서 한옥이 기와가 맞닿은 듯이 빼곡히 들어섰다고 소개한 문장이 있다('지금의 서울'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그런데 파파고는 이 문장을 'It is impressive that the hanok is densely packed with tiles'로 영작해버렸다. 해석하면, '기와(타일이 아니다!)로 가득한 한옥의 모습이 인상 깊다'이다. 원문은 기와처럼 빽빽이 들어섰다는 뜻인데, 파파고는 '기와가 맞닿을 듯이'를 '기와'로 이해하였다. 그러자 한글 문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뒤 수정하였다. 한국어를 공부한 외국인이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중의적인 문장이기 때문이다. 기와가 가득한 '한옥'이 인상 깊은 건지, 기와처럼 자리 잡은 한옥의 '모습'이 인상 깊은 건지 애매모호한 문장이다. 그래서 '기와가 맞닿은 것처럼 빼곡히 자리 잡은 한옥의 모습이 인상 깊다.'로 수정하였다. 파파고는 '듯이'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랬더니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It is impressive to see the hanok, which is densely located as if roof tiles were touching.'로 영작한 게 아닌가. '빼곡히 자리 잡은'을 'which is densely located'로, '기와가 맞닿은 것처럼'은 'as if roof tiles were touching'으로 영작했다. 'as if'가 추가되면서 한옥이 기와의 모습으로 비유되었다는 뜻이 문장에 담겼다.
강화強化냐 강화講和냐 그것이 문제로다
파파고에 단점이 또 있다. 바로 동음이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어에는 형태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가 많다는 사실을 파파고가 모르나 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을 다룰 때 병자호란을 소개한 대목이 있다. 남한산성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이 성문을 열 것이냐 말 것이냐 하고 논쟁을 벌였다. 결국 강화론이 우세해져서 성문을 열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파파고는 '강화론'을 'The theory of reinforcement'로 영작해버렸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reinforcement'는 '(군대·경찰 등의) 증강 병력[증원 요원], (특히 감정·생각 등의) 강화'라고 나온다. 문장을 해석하면, '병력 증원해서 성문 열고 싸우자!'라는 정반대 의미가 되어버린다(병자호란 때 성문 열고 싸웠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다). 파파고는 '강화'를 세력이나 힘을 키운다는 뜻을 지닌 '강화強化'로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강화론'의 '강화'는 '강화講和', 즉 두 나라가 싸우다가 화해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파파고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 문장을 수정해보았다. '화해'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하니 'reconciliation'이라고 나온다.
'reconciliation'을 그대로 쓰려다가, 중학생 수준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좀 더 직역하였다. '화해'는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을 뜻한다. 병자호란에서 최명길은 왜 성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싸움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성문 닫고 항전하다가는 지쳐 쓰러질 것 같아서, 백성들이 청나라 군대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성문을 열었다. (비록 굴욕적이기는 했지만) 청 황제 앞에서 인조가 절을 하면서 싸움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왔다. 최명길은 '평화를 찾기 위해' 성문을 열자고 주장했다. 최명길의 의도를 살려야 했다. 그래서 '강화론'을 'making peace'로 영작했다.
공식 명칭은 '번역'이지만, 실제로는 영작에 더 가까웠다. 영작 공부를 했으나 직접 영작 봉사하는 것은 처음이라 파파고의 힘을 빌렸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대조하면서 파파고의 부족한 점 파악하고 문맥에 맞는 단어를 넣거나 한국어 수정하면서 영어 실력을 길렀다고 자화자찬한다. 무엇보다 외국인 입장에서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너무 독특하면 외국인이 관심을 가질지 의문스러웠고, 너무 흔하면(BTS, 숭례문, 김치 같은 것) 지겨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제 세분화'라는 작전을 세웠다. 다행히, 조인어스코리아에서 내가 만든 문서를 승인해주었다. 좋게 봐주었으니, 조인어스코리아 측에서 좋은 주제를 뽑아 홈페이지에 게시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그래도 흔함과 독특함을 절충하는 것은 어렵다).
<참고자료>
https://weaponsandwarfare.com/2016/07/30/korea-16th-century-the-japanese-and-manchu-invasions/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2215&cid=40942&categoryId=3338
https://www.gowonderfully.com/post/23-korean-online-shopping-websites-you-will-love
https://en.dict.naver.com/#/main(네이버 영어사전)
https://ko.dict.naver.com/#/main(네이버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