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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26. 2023

몇 년만의 심리상담

맑은 구름에 먹구름 열 스푼




  반은 맑고 예쁜 구름이, 나머지는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혼란스러울 시기였다.

“둘 중 하나만 하는 것보다 병원이랑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게 더 좋잖아요. “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라는 대답과 함께.

  “학생 때 이후로 심리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저번에 간 곳은 너무 별로였어요.” 어땠느냐는 질문에 이래서 별로였다며 설명했다. 그와 동시에 정착하기 이전까지 몇 번 더 이런 일이 일어날 테니 너무 상처받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의사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심리상담센터 리스트를 가지고 병원을 나섰다.


  맞지 않았던 센터를 뒤로 하고 정착한 곳은 직장과 가까웠다.

포근한 인테리어와 은은한 캔들 향이 주는 안정감도, 상담사 선생님의 믿음 가는 상냥한 말투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서약서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구두로 한다는 점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가는 일이 생길 경우 외부에 연락이 간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는 건 그 자체로 거부감이 들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란 걸 알지만 무책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구두로 약속을 하니 부담이 훨씬 줄었다.




  상담 첫날 목표를 세웠다.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 혼자서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지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적인 목표였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헤맸지만 굉장히 많은 이야길 쏟아 내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50분 내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루 만에 모든 걸 말해야 하는 의무는 없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 제어가 잘 되지 않았다. (한 번에 쏟아내는 것보다 견딜 수 있는 만큼 적당히 그리고 천천히 오픈하는 것이 좋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소에 갔다. 삶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우울을 나누기도 했으며, 일에 대한 힘듦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마음이야 어떻게 되든 외면한 채 하던 일에 열중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질러진 마음은 방치가 아니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능하다면 정리를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걸.


  그는 적절히 단호했고 충분히 따스했고 적당한 해결방법과 위로 방식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1년이 넘게 상담했다. 다음에 상담이 필요하면 다시금 그와 하고 싶을 만큼 잘 맞았다.

  그가 이끌고 간 곳엔 먹구름 대신 맑게 갠 하늘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끔찍한 삶의 단상만이 다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음속 무지개를 그려나갔다. 쉽지 않았다. 얼마 가지 못해 엎어지고, 넘어졌다. 잘해오다가도 지친다며 멈춰버렸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말라며 지지해 주던 것도 두 사람이었다.

  끝없는 따스한 응원 속에서 회복이라는 이름의 발걸음을 걸음마 떼 듯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회복 과정은 상처의 치유 과정과 비슷하다. 마음의 상처를 인지하였다면 자연 치유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도구도 이용한다.

  가능하다면 딱지가 진 이후에는 가려움을 이겨낸다. 딱지를 뜯어내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스스로 딱지가 떨어지도록 기다려준다. 너무 오래된 상처라 흉이 졌다면 애써 가리지 않도록 흉터마저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회복이다.


  상처가 나 소독을 했는데 다음날 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반복하다 겨우 연고를 발라둔 상태였다. 연고가 상처에 스며드는 시간을 참아내는 방법을 알아가고, 밴드를 붙여주고 흉이 남았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를 천천히 나아가야 했다. 확실한 회복을 위해서는 꾸준한 내원과 상담소 방문 그리고 약 복용이 필수 요소였다. 기억력 때문에 종종 약을 먹었는지도 까먹었지만 최대한 챙기려 노력했고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예약 시간에 늦는 한이 있어도 내원을 빠지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음속 무지개가 거의 다 칠해졌을 때 인생에 새로운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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