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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27. 2023

우울증의 끝은 자살이 아니라 단약이었다

완치에 대하여




  “기분이 어때요?” 리튬을 먼저 끊고 남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들까지 먹지 않게 됐다. 의사 선생님과 상의 하에 단약을 한 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미래여서 뛸 듯이 기쁘다던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래요. 예상 못해서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아요.”

 무덤덤한 반응에도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게 그래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라며 인정해 주셨다.

 진료 날짜와 심리 상담 날짜가 겹치는 때가 많았는데 소식을 전하자 상담사 선생님께서도 잘됐다며 축하해 주셨다.


  기대하지 않았고 상상하지 않았던 날이 왔다는 것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행복하지 않지만 최악도 아니다.

  약을 덜 먹는다는 것은 하나씩 줄여갔으니 크게 와닿았던 것 같은데 이제 안 먹어도 됩니다. 라니 믿기지 않았다. 현실성 없는 말처럼 들렸다.

  전처럼 내 상태를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으니 완치이거나 완치에 가까운 상태이구나. 더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


“ 전에는 제가 완치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 의사 선생님은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너무나 비합리적인 사고였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는 아이처럼 겪어보지 않고 주저앉아 울었다.


  좋은 일이니 주변에도 사실을 알렸다. 치료받는 걸 걱정하면서도 지켜봐 온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기뻐해주었다.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삶이 우울증 완치 전과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차이가 극명해서 스스로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단약 전후 모두 내 모습인 걸 인정한 뒤에는 적응이 필요했다.


  우선 생각의 변화가 컸다. 이전 같았다면 그럼 그렇지, 뭘 새삼스레. 하며 자기 비하에 빠졌을 일에도 ’ 그럴 수 있지 ‘라는 말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밝아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 이에 대해 말하니 “지금 모습이 원래 이담님의 모습일 거예요.”라고 하셨다. 아파서 그랬구나. 내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우울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구나.


  2년 아니 그보다 셀 수 없이 오랫동안 마음의 일기예보는 사계절 내내 기상 악화였다. 봄엔 미세먼지가 뒤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여름엔 먹구름이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고 장맛비를 퍼부었으며 가을은 느낄 새도 없었다. 겨울엔 감각을 없앨 만큼 차가웠다. 그러다 차츰 날씨가 따뜻해지고 해도 떴다가 밤에는 달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무지개가 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행복해도 되나 보다. 힘들었다. 안녕, 잘 가라 우울증. ‘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제는 이리저리 치이며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순탄치만은 않게 살아왔는데 마음을 조금 놓아도 되겠지. 숨을 돌려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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