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감기처럼 오는 공황의 증상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나서 병명과 증상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단도 받았고 증상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께 들었는데도. 왜 내 마음은 계속 힘든 걸까. 도무지 시원해지지 않았다. 이게 좋아지기는 하는 걸까?
직업 특성상 남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입장이었지, 나 스스로 상담을 받아본 적은 극히 드물었다.
사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선을 긋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경우는 있어도 평소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에너지를 매우 뺏기는 극 I, 슈퍼 내향형인 사람이다. (교사라고 다 외향적이지는 않다.)
생각보다 카운슬링에 재능이 있었는지, 나와 상담을 마친 사람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거나 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MBTI 특성상 공감능력이 너무 뛰어나 남을 잘 관찰하고 이해도 잘한다. 그런데 정작 왜 나는..) 그런데 내가 신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 낯설었고..
그냥 책을 읽거나 좋은 강연을 듣고 스스로 해결하면 되지 왜 상담이 공황장애 증상에 필요한 부분인지도 의아했다. 매일 약을 먹으며 매주 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나는 극심한 우울함을 느꼈다. 공황장애 증상인 '답답함'도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심하게 느끼곤 했다. 심지어 환승하는 지하철 역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 같은데에서 어지러움이나 호흡 곤란과 같은 공황 증상이 미세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나타난 내 증상들은 마음 또한 피폐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에서 읽은 공황 관련 서적에서는 공황 장애와 우울증은 친구처럼 따라다닌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우울증을 겪어 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분명 겪었다. 당시 개인사로 조금 힘든 일이 있었는데, 직장에서도 항상 공허하게 있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던 직장 동료에게 개인사를 털어놓았더니 그렇게 힘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당시 내가 겪었던 우울증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좋은 강연과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나를 도와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인생의 몇몇 고비를 겪었지만 지혜롭게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특히 작년 같은 경우는 일적으로도 개인 생활적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당연히 힘든 일들은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에 선생님께 질문을 하였다.
"저는 힘들었던 일은 다 극복하고 몸도 마음도 다 좋았었어요. 그런데 왜 지금 와서야 이런 일이 생기는지요..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 "
"원래 공황장애는 버틴 시간 후에 좋아지고 나서 나타나요. 과거에 버텼던 일들이 길면 길수록 뒤에 후유증 또한 길어진답니다. "
충격이었다.
좋아진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금까지는 다 괜찮아진 게 아니었던 건가?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나 보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3년 전쯤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시점쯤에 갑자기 안면마비가 발생했었다. 증상은 치통부터 시작하더니 두통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며칠 안에 얼굴 한쪽이 통째로 마비되었다. 한쪽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없어 항상 그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거나 눈물이 흘렀다. (눈을 완전히 감을 수 없어 눈이 건조해진 관계로 인공눈물을 한쪽 눈에 종종 넣어주어야 했다.) 가장 슬펐던 것은 음식을 씹을 때도 한쪽으로 씹어서 항상 한 쪽 이가 욱신 거렸고, 양치질 후 입을 헹굴 때에도 구강 내 한쪽 힘을 온전히 줄 수가 없어 물이 입술위로 질질 흘렀다. 당시 양방(신경과)과 한방 치료를 모두 받았었는데, 안면마비는 치료시기가 늦어질수록 회복도 완전히 되기 어렵다고 하여 치료에 전념했던 기억이 난다. 치료가 늦어지면 평생 비대칭인 얼굴로 살아갈 수도 있었기에 나는 당시 너무 무서웠다.
그렇다면 공황장애도 같은 개념인 건가? 치료시기를 놓치면 생에 한 번은 크게 등장하고, 버틴 시간이 길어질수록 치료시기로 길어지게 되는.
나는 내가 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의 1년 정도는 된 것 같다.
공황장애는 신경의 모든 세포가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원래도 예민한 편이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내가 스스로 식단을 짜고, 운동도 하며 병원 치료도 잘 받고 있는데.. 나는 내 주변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했다. 홀로 시간을 보내며 딥한 우울감을 깊이 느끼며 나는 생각에 생각을 물고 더없이 우울의 늪으로 계속해서 빠져만 갔다.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이긴 한데 '죽으면 이 생각의 고통이 끝나겠지?'까지 도달하여 아파트 거실 창문을 지긋이 바라보는 위험한 단계에까지 갔다.
그리고 이 증상은 시간이 흘러 신체 증상이 좋아지며 더 커졌다. 몸이 아팠을 때는 몸 고치는 것에 집중하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제는 몸의 증상보다 내 생각. 내 마음의 생채기를 치료할 단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