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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리 Sep 29. 2024

유리병에 빠진 꿀벌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젊은 날은

해뜨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네

꿀을 따러 꽃밭을 헤맬 때

향기란 그저 해내야 할 일

한낱 산더미같이 쌓인 일에 불과했네

밤, 유채, 아카시아, 잡화, 때죽나무꿀……

꿀이란 꿀은 다 맛보고 싶어

눈을 뜨고 잠을 자야 했네

가진 꿀은 나누어 가졌지만

정작 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네

그래, 너는 원래 꿀벌이니까

꿀을 모으는 게 당연하지

그런 너 때문에 나는 늘 외로웠어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쉴 새 없이 꿀을 따 모았어

그러나 꿀 속에 갇혀 사는

바보스러운 내 모습을 알게 된 순간

병은 미끄럽고

병은 유리로 된 거대한 벽

단맛은 헤어 나오기 힘든 감옥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조커를 집어 드는 일

매주 행운을 사 모았네

그러나 벼락 맞을 운명은

꿀물 떨어지는

생지옥에 갇혀 끝없이 추락하는 일

사탕처럼 흘러내리는 계단을 빨고 있었네

오를 수 없는 계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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