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새가 난다. 유리는 허공에 그물을 던져 놓는다. 새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부레를 움직일 수 없다. 유리에 박혀 지느러미를 잘리고 만, 새가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죽어 간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유리는 새를 받아 든다. 자꾸 새어 나오는 흐느낌은 이차원 삽화에서 흘러내리는 독백. 유리와 새의 거리만큼 먼 입장이 새와 유리에 갇힌 심장을 관통한다. 투명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새가 버둥거릴 때 유리는 거미처럼 입을 오물거린다. 송곳니에 물린 숨통에서 피가 솟구친다. 보이는 것만 믿은 습성은 눈앞을 흐리게 만든다. 내가 쓴 탈은 내 크기에 알맞은 관, 돌변하는 늑대의 탈을 숨기고 수시로 양의 탈로 바꿔 쓴다. 너를 뭉갰을 땐 몰랐던 내 마음이 뭉개지고야 비로소 당연은 잘못으로 수정된다.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늑대의 하울링을 틀어막는다. 양의 탈 아래로 흘러내리는 늑대를 지운다. “벌거벗은 임금님!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양의 얼굴을 한 늑대가 관 속에 고요히 누워 있다. 창틀에 가득 낀 먹물이 눈물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