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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2014년 시와사상 등단작 중 1

by 김사리

저것은 집이 없는 자의 슬픔, 또는 집을 버린 자의 자유

시각은 수시로 변한다

집이 짐이 되는 순간, 등은 무거워지고,

깃들 곳이 없는 순간, 등은 허무해진다

두 개의 선택에서

민달팽이는 자유를 택한 것

맨발의 사내, 여전히 몸을 부릴 곳은 저 바닥이다

그 많은 생각을 다 깔고 누운 동안

노숙의 냉기가 뼛속으로 달라붙는 동안,

하루가 빠르게 돌고

지구의 어깨가 기울어졌다

세상의 속도는 그를 비껴가고

여전히 느릿느릿, 그의 보폭은 바뀌지 않았다

먼 하늘로 달아난 한때의 별들

물컹, 그것을 밟았을 때 알아챘다

밟히는 순간 놀라 튀어나온 푸른 내장들

별들의 푸른 내장이 실핏줄처럼 비치는 것은

남은 목숨이 딸랑거리는 것처럼 쓸쓸한 일,

도시의 그늘이 깊어지는 밤

달팽이의 생각이 발등을 타고 오른다

신발을 잃어버린

오래전 기억이 달팽이의 몸속에서 출렁거린다

길고 긴 밤이 느릿느릿 끈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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