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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리 Sep 29. 2024

민달팽이

2014년 시와사상 등단작 중 1

저것은 집이 없는 자의 슬픔, 또는 집을 버린 자의 자유     

 시각은 수시로 변한다     

     

 집이 짐이 되는 순간, 등은 무거워지고,     

 깃들 곳이 없는 순간, 등은 허무해진다     

 두 개의 선택에서     

 민달팽이는 자유를 택한 것     

     

 맨발의 사내, 여전히 몸을 부릴 곳은 저 바닥이다     

 그 많은 생각을 다 깔고 누운 동안     

 노숙의 냉기가 뼛속으로 달라붙는 동안,     

     

 하루가 빠르게 돌고     

 지구의 어깨가 기울어졌다     

 세상의 속도는 그를 비껴가고     

 여전히 느릿느릿, 그의 보폭은 바뀌지 않았다     

     

 먼 하늘로 달아난 한때의 별들     

 물컹, 그것을 밟았을 때 알아챘다     

 밟히는 순간 놀라 튀어나온 푸른 내장들     

     

 별들의 푸른 내장이 실핏줄처럼 비치는 것은     

 남은 목숨이 딸랑거리는 것처럼 쓸쓸한 일,     

 도시의 그늘이 깊어지는 밤     

 달팽이의 생각이 발등을 타고 오른다     

     

 신발을 잃어버린     

 오래전 기억이 달팽이의 몸속에서 출렁거린다     

 길고 긴 밤이 느릿느릿 끈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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