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길들이기>
내 다리가 우리의 날개가 될 수 있다면
<드래곤길들이기> ★★★★★
‘내 안의 소름이 요동쳐 지금의 너를 날게 해’
올해 6월 개봉한 드래곤길들이기(2025)는
드림웍스의 최고의 역작인
드래곤길들이기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이다.
최근 실사 영화들의 좋지 못한 결과물에
실증이 나던차
드래곤길들이기의 제작 소식은
내게 한줄기의 빛이었다.
예고편에서의 원작을 철저히 고증한 캐스팅과
원작 드래곤길들이기의 훌륭한 bgm,
배우들의 연기력, 위화감 없는 드래곤의 CG는
안 그래도 좋아하던 작품의 실사에 대한
기대치를 높디높은 하늘 끝까지 올려놓았다.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바이킹과 드래곤의 전쟁에서
드래곤을 없애는 것이 삶의 모든 목적인 바이킹들과
다른 신념을 가진 ‘히컵’은
무리 속에 속하지 못하며
족장인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히컵은 전설의 드래곤을 잡게되지만,
드래곤을 죽여야하는 바이킹의 신념을 깨고
드래곤인 ‘투슬리스’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영혼의 친구가 된 투슬리스와 함께
드래곤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여정.
이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비교군인 디즈니 영화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최근 디즈니와 차별된 행보
최근 디즈니의 영화들이
좋지 못한 평을 받는 이유는
PC적인 요소가 가장 컸을 것이다.
인어공주, 백설공주, 뮬란 등등
우리가 사랑했던 옛 작품 들을
실사로 되살린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나오는 족족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며 망했다.
그렇다면 디즈니의 실사 작품들은 왜 망했을까?
가볍게 표현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질문이지만
쉽게 표현해 보자면
원작의 중요한 요소를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이른바 PC는 소수자 차별이나 혐오 표현을 지양하고,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분명 없어서는 안 될 운동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영화의 작품성을 망가뜨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디즈니의 변하지 않은 태도들에 관객들은 질렸고.
꾸준히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드래곤길들이기의 드림웍스는 더욱 빛을 바랬다.
그렇다면 과연 디즈니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일까?
<드래곤길들이기>가 특별한 이유
앞서 설명했듯.
완벽한 원작 고증의 CG와 훌륭한 사운드,
놀랄 정도의 캐릭터 싱크로율은
영화가 어디까지나 리메이크작이기 때문에 칭찬받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드래곤길들이기 시리즈만의 특별한 무언가는 무엇일까.
인간과 드래곤의 관계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 신뢰, 성장과 상실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히컵과 투슬리스의 우정과 낭만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삼위일체의 가족영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그저 애들 영화로서 그치는 것이 아닌
드림웍스의 최고 수작이 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서사 구조상 너무 이상적이다.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명작에 흠이 갈 정도는 아니지만
히컵과 투슬리스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과
감정이 폭발하는 갈등은 지나치게 간결하게 해소된다.
이후 부친 스토이크와의 갈등,
부족 사회의 전통과 진보 사이의 충돌이
더 깊게 다루어졌다면,
영화는 더욱 깊이감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후반부 대규모 전투 장면은
서사의 감정선을 유지하기보다는
블록버스터적 긴장감에 급히 기댄 면이 있다.
감정에서 감정으로 천천히 비행하던 영화가,
마지막 순간엔 속도에만 의존해 버리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관계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에
단순하면서도 울림 있는 답을 제시한다.
히컵은 싸우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세상을 바꾼다.
그가 택한 길은 정복이 아닌 공존,
두려움이 아닌 이해였다.
어쩌면 영화 속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은
히컵이 보여준 드래곤에 대한 사랑 보다도
히컵의 아버지인, '스토이크'가 보여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영화가 보여준 드래곤은
그저 상상 속 동물일 뿐이었을까?
어쩌면 스크린 밖의 우리도
각자의 드래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움과 공포의 모습으로.
하지만 그렇기에 선택할 수 있다.
맞서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혹은 그것을 길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듯
도망가기만 해선 끝나지 않을 전쟁은
되려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으로
끝이 났다.
어쩌면 우리 세계의 모든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히컵이 투슬리스에게 다다간 한 발짝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세계의 모든 전쟁과 싸움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대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