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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Feb 03. 2023

                사춘기

 사춘기 : 신체의 성장에 따라 성적 기능이 활발해지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


 그 아이는 열여섯 살의 중학생으로 보기에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활발한 성격이라서 묻는 말에는 언제나 시원스레 대답도 잘했다.

 학교 내에서는 말썽을 부리는 일도 없고 청소도 잘했다. 

 성적이 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수업일수가 모자라 졸업을 못할 정도로 결석을 하는 것이다. 결석 사유는 가출이다.

 부모가 어렵게 찾아서 데려오면 며칠 후에 또 나간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머리를 모조리 잘랐다. 그랬더니 모자를 쓰고 나갔다.

생업에 종사해야 먹고사는 부모가 아이를 항상 감시하듯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니가 같은 학교에 다니었는데 얌전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내에게 말했단다. 총으로 쏴서 죽이고 싶다고.

 자식이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부모의 가슴이 무너진다는 것을 언제쯤이나 알게 될까?

 

 집을 나가서는 어디에서 자느냐고 물었다.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남자 친구 방이 이층이거든요. 그래서 아래층의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들어가서 자고 새벽에 나와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이 아이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집이 싫고 학교가 싫고 남자아이와 노는 것이 좋을 뿐이었을까?

 더 깊은 곳에는 말 못 할 그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였다. 아이의 엄마는 눈물만 흘렸다. 

 내 딴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허사였다.

 마지막 방법으로 고등학교는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그냥 오늘이 있을 뿐 미래의 그림이 없기 때문에 진학도 의미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를 갖은 감언이설로 설득해 보았다. 조금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자면 우선 중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 가면 졸업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겨우 겨우 남은 기간에 삼일에 이틀은 등교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선생으로서 학생의 합당치 못한 결석을 인정하는 꼴이 되다니 말도 안 된다는 자책감에 잠을 설쳤다. 

 '나는 선생의 자격이 있는 것인가?' 

 참으로,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어쨌든 아이는 약속을 지켰고 따라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정원 미달인 학교가 있어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입학식을 하고 나에게 찾아왔다. 뜻밖이었다.

 화장을 하고 평상복을 입으니 마치 대학생쯤으로 보였다.

 여전히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래도 고등학생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의 생활이 정상적으로 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전히 시원하게 대답을 하며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으나 내심 걱정이 앞섰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 아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 쯤 사춘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제 아이는 어떠한 훈육의 말과 태도로 키우고 있을까? 

 본인의 과거를 후회하고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사춘기에 찾아오는 돌발성 행동은 부모가 감당이 안되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명한 소아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 사춘기의 자녀를 대할 때 첫째 아이는 부부에게 온 손님이라고 생각하라. 둘째 손님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니 명령이나 지적을 하지 말고 소통을 해라. 셋째 자식은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사춘기의 아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는 부모가 아니라 친구라고 한다.

 때로는 이유 없이 방문을 '꽝' 닫고 혼자 있고자 한다.

 이렇게 보통의 아이들이 겪는 사춘기의 진통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보통의 선을 넘는 아이들이 있어 걱정인 것이다.


 자식이 어른이 되어도 '나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며 시시 때때로 자문해 보게 되는 것이 부모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쉽지 않지만 특히 부모의 역할은 가장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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