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이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엊그제, 장장 3주에 걸쳐 이 소설을 다 읽은 느낌이 바로 '그래서 어쩌라구?'이다.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누군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을 듣는 과정.
고통스러웠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그레고리우스, 그는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에 해박한 문헌학자이다.(벌써부터 쎄하지 않은가?) 그는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릴 정도이고 평생 루틴대로 강의(교사인지, 교수인지, 스위스의 학제를 잘 모르겠다)를 하던 남자다.(그 왜, 사람들이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칸트 형 못지않은)
그런 그가 어느 비 오는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위태롭게 다리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고, 또 당연하게도 그녀를 구한다.
그녀를 데리고 학교로 간 그는 "모국어가 뭐지요?"라고 묻는다. "포르투게스"라고 답하는 여자.
강의실로 데려왔던 그 여자는 사라지고 그레고리우스도 강의실을 나온다.
그는 그녀를 찾고자 이리저리 헤매다가 에스파냐 책방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어떤 여학생이 읽고 있던 책, 이나시우 드 알메이다 프라두의 <웅 오리베스 다스 팔라브라스>, 포르투갈어로 <언어의 연금술사>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사진이 나온 쪽을 펴서 전구에 비스듬히 비추어보았다. 그런 다음 형형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그의 눈빛을 보며 번역한 글을 한 문장씩 읽어나갔다.
돌아갈 수 있다. 8시 십오 분 전에 키르헨펠트 다리를 지나 학교에 들어가, 수수께끼같이 사라졌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하나 지어내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그를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겠지만 상관없었다. 이 각본은 그레고리우스의 마음에도 들었다. 그들은 그가 하루 동안 지나온 엄청난 거리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였다. 그는 이미 그 거리를 지나왔고, 자신이 감행한 이 조용한 여행을 다른 사람들이 무위로 돌려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는 유럽 지도를 꺼내 펴놓고, 기차를 타고 어떻게 리스본으로 갈지 생각했다. 전화로 알아보니 역의 안내 데스크는 6시나 되어야 문을 열었다. 그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리스본으로 떠난 그는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며 프라두에 대해서 알아간다.
프라두는 평생 척추염 때문에 고통을 받는 아버지 때문에 의사를 선택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 소년이었다.
프라두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 조르즈와 우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였지만 여자(조르즈의 여자친구) 때문에 갈라서게 된 소년이었다.
프라두는 여동생 아드리아나의 목숨을 구했지만 그 덕에 받게 된 여동생의 맹목적 존경과 사랑을 숨 막혀 한 소년이었다.
프라두는 마리아 주앙을 사랑했지만 정작 결혼한 여자는 파티마(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여자)였다.
프라두는 의사로서 저항운동가들을 고문하던 맨드스의 생명을 구하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독재 저항 운동에 뛰어든 소년이었다.
프라두는 ...... 프라두는 ......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와 관계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프라두의 모습을 실체화시켜 나간다. 이 사람이 모르던 저 사람만의 기억.
프라두를 기억하는 주변인들은 과거에 살기도 하고, 과거를 봉인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더라.
그레고리우스는 그렇게 장장 600 페이지에 걸쳐 프라두의 내면(글을 통해 드러난)과 사람들의 내면과 자신의 내면을 펼쳐 놓았다.
프라두는
오십 셋이 넘어 죽었다지만 내가 볼 때 그는 평생 소년이었던 사나이다.
주변의 인정을 갈구하고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친구들과의 신뢰를 원하고 또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소년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600페이지에 걸친 자의식의 과잉이야말로 소년들의 특징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프라두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라두가 그런 사람인데, 어쩌라구?"이다.
남들은 이 책을 인생의 책꽂이에 꽂겠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레고리우스의 일탈과 아마데우의 내면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이었던 제레미 아이언스를 떠올리며 읽었더라면 훨씬 더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나는 제레미 아이언스를 좋아하고 그 목소리도 좋아한다)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머릿속의 상상력의 빈곤과 대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매력을 생각하게 되었고
'내면의 진정성', '비대한 자아'와 같은 것들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내 취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소설.
독일에서 200만 부 이상 팔렸다는데, 독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
당분간 외국문학은 안녕하게 만들어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