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시선의 초상화: 정신과 의사의 시선에서

응시가 선택이 되는 순간

Prologue


불타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기억이다.

이 영화는 비명을 지르지 않느다. 분열도, 광기도, 자기파괴도 없이 흐른다.

대신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 머무를 뿐.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가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기억으로 남는가를 묻는 영화아다.

마리안은 화가이고, 엘로이즈는 그려져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바라보는가가 아니라, 누가 기억하기로 선택하는지의 문제이다. 나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욕망의 폭발이 아니라 욕망의 억제와 전환, 즉 감정의 저장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사랑은 소유되지 않는다.

발화되지도 않는다.


사랑은 오직 응시(Gaze)를 통해 축적되고, 기억이라는 형태로만 살아남는다.

이 영화에서 불타는 것은 여인이 아니라, 그 여인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기억의 선택'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욕망이 주체를 찢는 영화였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욕망을 주체 안에 안전하게 봉인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조용하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지금까지의 어떤 파열음보다 오래 남는 서늘한 진실이 된다.


응시는 선택권이 아닌 책임감이다.

I. The Ethics of Looking — 바라본다는 것의 책임감




이 영화에서 시선은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감으로 작동한다. 마리안은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며 초상을 그려야 한다. 처음의 시선은 업무이고, 임무이며, 숨겨진 감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시선을 오래 유지하지 않는다. 곧 시선은 공개되고, 동의되고, 서로에게 되돌아온다. 엘로이즈가 마리안에게 던진 질문은 외모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Is that how you see me?” (당신은 나를 그렇게 보나요?)



그것은 “당신의 시선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남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질문이다.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이는 타인의 내면을 해석하려는 충동을 멈추고 그 내면이 스스로를 드러낼 시간을 허용하는 순간이다. 바라본다는 행위가 침입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건—바로 동의와 상호성이다. 이후 마리안의 시선은 더 이상 관음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기다리고, 정확해진다.

그녀는 엘로이즈를 소유하지 않기 위해 더 세밀하게 관찰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다가가서 움켜쥐는 일이 아니라, 끝내 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끝까지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선은 안전하다. 권력이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응시는 정복이 아니라, 상실을 전제로 한 약속이다. 두 여인의 응시는 서로의 정신적 피부를 조각하며, 시간의 경계를 넘어설 비물질적인 형태를 미리 새긴다.


관게는 정의되지 않아도 기억은 선택할 수 있다.


II. The Choice of Memory — 기억을 선택하는 사랑




이 사랑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두 사람 모두 차가운 명료함으로 처음부터 알고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진정한 비극은 이별이라는 엔딩이 아니다.


비극은 이 사랑을 현재에 붙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마리안과 엘로이즈는 사랑이 끝날 것을 알면서도 그 시간을 연장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을 정확하고 농밀하게 살아낸다. 정신과의 시선에서 보면, 이 태도는 회피도, 부정도 아니다. 이것은 감정의 성숙한 처리 방식에 가깝다. 상실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지 않고, 상실을 견디기 위해 현재를 왜곡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사랑은 지속되지 않아도, 기억은 선택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기억은 상처가 아니라 형태(Form)다.



붙잡지 않았기에 망가지지 않았고, 소유하지 않았기에 변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랑은 끝나도 자아를 찢어버리지 않는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욕망이 자아를 심판했다면, 여기서는 욕망이 자아를 보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는 음악을 듣고, 울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 눈물은 상실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된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사랑은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고, 그녀를 그녀 자신으로 남겼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완성되는, 가장 고독하고도 강인한 윤리를 보여준다.





Epilogue



불타는 것은 여인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이다.

이 영화에서 불타는 것은 육체가 아니다. 욕망도, 관계도, 미래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선택이다.

마리안과 엘로이즈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 사랑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함께하지 않기로 선택했지만, 잊지 않기로는 분명히 선택했다.


이것은 아주 드문 방식의 사랑이다.


상실을 피하려 기억을 지우지도 않고, 상실에 매달리기 위해 현재를 왜곡하지도 않는다. 대신, 감정을 자아 안에 안전하게, 형태를 갖추어 저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가 흘리는 눈물은 미련이 아니라, 기억이 영원히 응고되었다는 차가운 확신이다.



사랑은 지나갔지만, 그 사랑이 남긴 비물질적인 형태는 아직 그녀 안에 있다.


불타는 것은 여인이 아니라, 끝내 놓지 않겠다고 선택한 기억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사람을 파열하게도 하지만, 어떤 사랑은 사람을 온전히 남긴다.



그리고 때로, 그 온전함은 함께하는 미래가 아니라 조용히 간직된 과거 속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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