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이야기 3 — 내 쪽에서 끝낼 수 없어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

H는 그가 떠난 줄 몰랐다.

단지,

그가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침묵이

H에겐 하나의 암시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정말 끝일지도 몰라.”

“내가 뭘 또 망쳤지?”

“아니야, 너무 예민한 거야.”

그녀는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분석했고,

마침표의 개수에 의미를 부여했고,

‘읽음’ 표시가 사라지는 타이밍을 기억했다.


하루는

메시지를 열 번 넘게 쓰고 지웠다.

“잘 지내?”

“혹시 내가 뭘 잘못했을까?”

“너무 말이 없어서 걱정돼.”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노트 앱에 혼잣말을 적어두었다.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반응을 중단했고,

그녀는 그 침묵 안에서

수십 개의 반성문을 스스로 써 내려갔다.

‘어쩌면 내가 너무 요구했나’

‘그날 그 말이 기분 나빴을까?’

‘좀 덜 매달렸어야 했나?’


그날 밤,

H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은 너무 빨리 뛰었고,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휴대폰 화면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가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처벌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 시절, 그녀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

“그가 나를 떠난 게 아니라,

내가 남겨진다는 감각만 남았다.”


정신의학적 노트

H는 유기불안(Abandonment anxiety)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 상태는 보통 애착 대상이 반응을 멈추었을 때 활성화된다.

침묵은 처벌처럼 느껴지고,

침묵을 풀기 위한 지독한 자기비난과 반성이 반복된다.

관계가 끝난 게 아님에도,

떠남의 공포는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작동한다.

이 불안은

과거의 진짜 ‘버림받은 경험’을 현재에 반복하게 만들며,

상대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버림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더 크게 만든다.


H에게 해주고 싶은 말

H야,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그는 말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고,

너는 그 빈칸을 해석하는 사람일 뿐이야.

그가 조용해도,

네 안에 말은 살아있어.

그가 떠나도,

너는 남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머물 필요는 없어.

너는

남겨졌던 게 아니라,

스스로 오래 머문 거야.

이제,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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