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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Jul 06. 2022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2019)

사랑을 위해 무엇까지 버릴 수 있나요?



줄거리


낡고 오래된 의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면서 지구를 사랑하는 한아에겐 자유 영혼이란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다. 여느 때처럼 한아를 두고 애틋하지 않은 작별인사를 나눈 뒤 캐나다로 떠난 경민은 여행을 다녀온 직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경민의 입에서 초록색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게 된 한아! 도대체 너의 정체는 뭐니?!




사랑을 위해 무엇까지 버릴 수 있나요?



우선적으로 소재의 독특함에 대한 찬사를 퍼붓지 않을 수 없겠다. 외계 생명체와 ‘우주적 사랑’을 하는 상상이라니, 그야말로 ”우주적 상상력” 아닌가. 이 작품은 ‘우주적 사랑’을 정면에 내세우며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사랑’이란 뭘까?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그 이상한 감정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이며 그의 종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야기 속 각 인물들이 사랑을 다루는 법을 살펴보면 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민으로 불리는 우주 생명체에게 사랑이란 가진 것을 모조리 포기하고 n광년을 날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망원경을 통해 한아를 지켜보며 몰래 키워온 사랑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한 걸까, 그 열렬하고 순진한 사랑은 어디서 솟아난 것일지 궁금했다. 그저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 소통하지 않고 그만큼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에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를 아는 일이란 답을 내려본다. 대화하지 않아도 경민은 한아를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사랑할 수 있었나 보다. 


주영의 사랑도 그렇다. 주영의 세계는 아폴로에 대한 사랑으로 구축되었다. 연예인과 팬, 그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아가페적 사랑 아닐지. 주영의 경우 우주로 아폴로를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 일명 ‘성덕(성공한 덕후)’로 자신의 세계 속 사랑을 이루어 낸다. 아폴로가 아닌 그 무엇이 없어도 온전한 세계가 완성되는 망설임 5%의 사랑을. 


연애 감정의 사랑이 아닌 또 다른 사랑도 있다. 경민이었던 엑스의 사랑은 ‘앎’에 대한 열망이자 이 또한 ‘우주적 사랑’이다. 마음에 남았던 대목이 있다. 한아의 사랑만으론 엑스를 지구에 붙들어 둘 수 없었다는 말. 결국 엑스는 한아가 준 사랑에 대한 가치를 뒤늦게 깨닫게 되지만 그건 ‘앎’에 대한 사랑의 상실 탓이 아닐까. <가진 게 없어 줄 것도 없는 엑스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도 좋았다. 늘 떠나고 싶은 내게 무언갈 잃을까 두려움 없는 경민 엑스는 멋있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며, 나를 붙들고 있는 닻들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을지, 나를 붙잡아주는 사랑을 돌아보게 했다. 


한편 주인공 한아의 사랑은 사랑의 총체, 그야말로 ‘우주적 사랑’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해를 헤매고 있어도 이어져 있는 보고 싶음”과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는 사랑.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그건 한아의 우주적 사랑이 가진 속성들ㅡ순진함, 열렬함, 애틋함, 부드럽고 따뜻한, 온전함과 완전함, 안정과 안전ㅡ 덕분이었다. 연관 없는 고래를 형제처럼 걱정하고 먼 나라의 일을 고심하고, 다른 종의 사정을 헤아리는 한아의 사랑을 보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아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몇 광년을 날아온 경민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사랑은 불안하게 요동치는 것이라 느껴오던 내게 이 작품은 유의미하게 남았다. 상처로 남을까 두렵기까지 했던 사랑이 어쩌면 나의 완전한 세계를 향해 몇 광년이고 달려가는 신나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 더 이상 사랑을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머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개별 유기체로 탄소 대사를 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 같다.


사랑, 글쎄 여전히 모르겠다.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던가? 내가 들어온 수많은 사랑 중 진짜 사랑이 있었던가, 하여간 내게는 여전히 먼먼 감정. 그러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난 후엔 어쩌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용기를 조금 가져본다. 먼 나라의 일을 고심하고 다른 종인 고래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랑도, 40퍼센트는 광물인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사랑하는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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