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끌어안아도 채울 수 없는 온기
언제부터였을까.
가슴이 시리고 차갑게 느껴진 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지는 않다. 문득 가슴이 차갑게 느껴지는데, 너무너무 시렸다.
한 번 그 느낌을 자각한 이후로는 퇴근 후 운전하는 차 안에서나 아이를 재우고 누웠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 둘째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아보기도 했다. 사람과 마주하는 포옹이 얼마나 충만한 기분을 주는지,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기에 더 자주 아이들과 포옹했지만, 순간의 따뜻함은 있었을지라도 그 차가움과 시림은 사라지지 않고 더 외롭고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그 원인도 알고 이유도 알고 있지만, 아직은 글로 써내기가 힘들다. 고3인 아들과 6학년 딸, 직장과 새롭게 준비하는 일, 가족, 친구와 이웃.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관계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다 보니 정작 내 심장이 고장 나는구나.
내 관심사가 이혼, 불륜이라서 그런 건지 많은 이혼남녀들이 세상에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져서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내가 살기 위해서였다. 어느 곳에도 나의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젠 너무 버겁기 시작했고, 갈무리되지 못한 지금의 감정들을 어딘가에는 쏟아내고 정리해야 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가족과 친구에게도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들에게도 상처고 고통이었으니까. 그만큼 남편의 외도는 충격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을 만큼 그와 나의 이야기를 아는 모두에게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을 테니까.
브런치나 커뮤니티 어디에도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이혼 이야기는 넘쳐났다. 예전에는 TV 쇼를 보듯 누구의 사연이 더 막장인지 기가막힌지 등에 관심이 쏠렸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가 돼버려서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고 견디었는지,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눈이 가고 마음이 동한다.
그런데,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내가 찾는, 나와 비슷한 사례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얘기지만 그 고통과 힘든 시간을 글로 써낼 수 있을 만큼 담담해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기에 아마도 찾지 못할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묻고 싶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이런 막장이 없다.
남편은 아빠로서 집안의 남자 어른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걸 안다. 나에게 얼마나 죄책감을 갖고 미안해하는지, 그 죄책감으로 집안 가사노동(물론 갑자기 잘하는 게 아니라, 결혼부터 지금까지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것은 우리 집의 철저한 룰이다.)과 아이들을 챙기며 본인 나름 최선을 다해 버티고 살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그의 최선이고 한계다. 아이들과 부모님 앞에서 그리고 수시로 함께 만나는 친구들 앞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본인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으로 나의 상처가 나아질 순 없다는 걸 그는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멈췄다. 아이들 챙기는 이야기, 꼭 해야 되는 이야기, 가족이 함께 밥상에 모여 같이 나누는 이야기 그 어디에도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가슴이 이렇게 시린 게 통증이나 부정맥 같은 병이었으면 좋겠다.
약을 먹고 나을 수라도 있을 테니까.
끝내고 싶다.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