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차형균은 창고 옆 조그만 방에 돌아와 분을 삭이며 술을 사다가 한잔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선배의 배려로 술을 참아가며 영업을 잘하고 있었는데 그만 폭발을 하게 되었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여 이성을 잃은 차형균은 창고에 얼음을 조각낼 때 사용하는 칼과 톱을 가지고 조만식이 영업을 하고 있던 얼음 창고로 찾아갔으나 조만식은 없었다.
조만식이 없어 그냥 돌아오면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인데 옆 막걸리 집이 보이자 톱과 칼은 구석에 숨겨놓고 들어가 또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조만식이 창고로 온 것을 알고 는 숨겨둔 칼과 톱을 챙겨 창고 사무실로 들어가 조만식을 살해하고 말았다.
일을 저지른 차형균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배형태에게 연락을 하자 배형태가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이미 사람들이 모여들고 경찰이 도착하여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 떠돌이 생활 ◆
차형균은 그 일로 구속 수감되어 15년 형을 살고 나왔지만 다시 시장 얼음가게를 할 수가 없었고 배형태 곁으로 못 갔다.
젊은 나이에 15년을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고 나온 차형태는 나이가 벌써 40세가 다되었다.
더 이상 대구에 있을 수가 없어 교도소에서 배운 조적공(벽돌 쌓는 것)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반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안 해본 차형태를 섣불리 데리고 다니며 같이 일한 사람이 없었다.
조적공 일을 배웠지만 실질적으로 공사장에서 일한 경험이 모자라서 전문 기술자들을 따라 다니며 실무경험을 쌓아야 했다.
먼저 출소한 사람들과 연줄이 닿아 경기도 아파트 공사장에 가서 일을 열심히 했다.
건설 공사장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같이 일을 하던 동료들과 사귀게 되었고 친하게 지나게 되었다.
빨리 돈을 모아 조그마한 가게라도 하나 하면서 생활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세상만사 일이 모두 뒤 틀어져 있었다.
아파트 공사는 대형 건설사들이 터파기 부터 시작해서 큰 공사를 맡고, 조그마한 일들은 하청을 주어 공사를 하는데 콘크리트 벽들이 올라가고 그사이 방마다 칸막이 벽돌을 쌓는 일들은 하청에 하청을 주어 진행이 되었다.
하청업체에서 일을 하다가 보니 일한 댓가 즉, 노임 단가를 제대로 쳐 주지도 안 하고 그것도 한 달씩 밀려 받다가 몇 달이 지나자 아예 하청 업자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동료들과 같이 원청 업체에 하소연을 해봤지만 원청 업체에서는 하청업자에게 모든 것을 계산해 줬다며 막무가내로 지불을 거절하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술을 먹고 난리를 쳐 볼까 하다가 15년이란 세월을 담장 안에서 보낸 시절이 있었는데 또다시 가기는 싫었다.
건축 공사장에서의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차형균은 일을 접고 00으로 내려갔다.
◆ 내가 있을 곳은 어디에..◆
00에는 교도소생활을 같이 하였던 동갑내기 감방 동료인 맹정수(가명 당시 38세)가 먼저 출소를 하면서 ‘갈 곳이 없을 때는 자기에게 오라’고 한말이 기억이 난 차형균은 그에게 기대어 볼 생각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맹정수는 00역 앞 사창가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야! 정수야!”
“이게 누고?”
“내 형균이다”
“그래 형균이 맞꾸나 언제 나왔나?”
“조금 됐다.”
“나오면 바로 나한테 오지 어디 갔다가 오나?”
“그럴 일이 좀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알았다 밥은 먹었나?”
"저 위에서 내려온다고 아직 못 먹었다."
“저 위 어디?”
“안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안산엔 왜?”
“아! 안산 아파트 현장에 일하다가 하청업체 사장 새끼가 돈을 떼먹고 나르는 바람에 내려왔다.”
“잘했다. 여기 같이 있어 보자. 내가 형님들한테 이야기해볼게.. 뭐 너 하나 정도야 같이 있을 수 안 있겠나? 형님들한테는 나중에 인사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맹정수는 00역 앞(지금은 00역이 옮겼음) 사창가에서 손님들이 화대를 포주들한테 카드로 계산을 하면 포주들의 카드 계산서를 받아 15% 떼고 캉을 해주는 일명 카드캉을 하는데 수입이 괜찮았다.
사창가에 사용하는 카드는 중간에 사고 카드가 많아 캉 수수료를 많이 받기도 하고 진상 손님들이 오면 처리도 해줘야 한다.
아직 오후시간이라 손님들이 올 시간이 되지 않아 조용한 사창가를 떠나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00 시장으로 갔다.
“00에 왔다고 하면 00 시장을 가봐야지”
“그냥 근방에서 간단하게 먹자.”
“괜찮다. 여기서 얼마 안 된다. 가자.”
그렇게 하여 800여 미터 떨어진 00 시장 안 식당으로 들어가며 후배를 찾아서 싱싱한 회를 가져오라고 주문을 한 다음 둘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지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다가 회랑 점심을 먹고 역 앞으로 돌아왔다.
“형균아! 이제 형님들 나올 시간인데 그전에 큰 형님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가자,”
“알았다.”
정수는 형균이를 데리고 사창가 중앙 쪽에 위치한 곳으로 가서 문을 들어서면서 먼저 큰소리로 “형님! 정수 왔습니다.”라고 신고를 했다.
안쪽 방문이 열리더니
“누구? 정수? 왠일이냐?”
“예 형님 대구에서 친구가 와서 형님에게 인사시키러 왔습니다.”
“들어 오거라.”라는 소리를 듣고 형균이랑 같이 거실로 올라섰다.
“형균아! 동네 제일 큰 형님이다. 인사해라!”
“처음 뵙겠습니다. 차형균입니다.”
“어 그래 앉거라.”하고는 방안을 쳐다보며
“여기 차 한잔 가져오거라.”라고 소리를 쳤다.
집은 옛날집이었지만 조그마한 정원이 있었고 품위 있게 꾸며 놓았다.
큰 형님을 지칭하는 김태주(가명 63세)는 4형제 중 제일 맏이였고 4형제 전부 00에서 한 가닥 하는 관계로 어느 누구도 이 형제들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부인이 사창가 포주였던 것이었다.
“나중에 사무실에서 보면 되지 뭐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그래도 큰 형님에게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뭔 일 있나?”
“이 친구는 대구 00 시장에 있었는데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학교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사고 치고 들어가 있을 때 이 친구가 많이 도와줘서 출소해서 갈 때 없으면 나한테 오라고 했더니 왔기에 같이 있어 보려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래? 같이 있어 보지 뭐 .. 여기도 있어보면 괜찮을 것이다. 자 악수나 한번 하자.”
바닷가인 00 사나이 같이 시원하게 차형균을 받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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