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준비. 수동적인 기다림.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언제나 NPC들이 존재한다.
Non-Player Character.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이 불가능한 캐릭터를 의미한다.
이 캐릭터들은 내가 언제 만나러 가든,
그 자리에서 같은 말을 하며 나를 기다린다.
10년 만에 다시 접속해도 여전히 그곳에서
나에게 같은 말을 건넨다.
나는 NPC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군대를 전역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때,
오랜만에 방문한 성당에는
여전히 그 신부님께서 계셨다.
지난날, 나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셨던 분.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신부님은 성당에 계셨다.
NPC처럼, 같은 자리에서 사랑을 알려주셨다.
되고 싶었다.
나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결같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사람은 NPC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언제나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이기에
NPC처럼 늘 같은 자리에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찾는 누군가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동안은 ‘사랑을 주는 방법’에 대해 알고자
온 힘을 쏟았다.
그 언젠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소식에
무력함을 느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사람을 만나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좋은 말을 건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의를 건네고,
그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굳게 믿었다.
사랑 방문 판매 같은 느낌이었을지도...
하지만 능동적인 사랑만이 정답은 아니다.
수동적인 기다림도, 사랑이다.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다가
문득 눈물이 흘렀다.
어린 날의 나에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는 문장이 다가왔지만,
그날의 나에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문장이 다가왔다.
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해온 것은 나일뿐.
항상 같은 자리에서,
여러 문장으로
나에게 사랑을 줄 날을
겸허히 기다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능동성을 잃을 수는 없다.
여전히 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치만,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나의 글도, 나의 노래도, 나의 말도
언젠가 누군가가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꾸고 다듬어 놓기로 했다.
그 언젠가로 돌아가도
친구의 죽음을 내가 멈추진 못했을 거라고
이제는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내 마음에 들릴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의 공간을 예쁘게 다듬고,
사랑을 가득 채운 채로 기다린다.
겸허히, 한 자리에서.
NPC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