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GHEE)를 쓰다.
주말이 되면 나만 빼고 성이 같은 식구 세 명은 늘 늦잠을 잔다.
나는 일어나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보통은 커피를 한 잔 진하게 마신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를 위한 아침을 차렸다.
삼시세끼 가족 식사만 챙기는데도 진저리가 나기에 혼자 있게 되면 나를 위한 밥상보다 편하게 쉬는 게 먼저였다.
마침 어제 하루를 더 넘기면 영 못 먹을 것 같던 아보카도로 초간단 과카몰리 만들어 놓았기에 달걀 프라이만 하나 얹고 위에 칠리 플레이크를 살짝 뿌려서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잘 사용하지 않던 오래된 접시를 꺼내 세팅했다.
프라이팬 닦는 게 싫어서 나를 위한 달걀 프라이도 하지 않는, 아무 접시에나 먹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오늘은 달걀 프라이에 기(GHEE) 버터를 사용해 보았다.
우연히 본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가 먹는 오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었다.
식품 관련 정보들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먹을 게 없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이곳 특정 브랜드 오일에서 유해 성분이 검출되었던 적이 있었고 일상에서 생각보다 오일사용량이 많기에 귀가 솔깃했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팝콘을 튀길 때 사용하던 오일이 굳어서 엄마들에게 이 기름은 참 좋지 않다고 했을 때 엄마들이 기(GHEE)가 좋다는 말을 해줬었다.
난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파냐고 했더니 마트에 가면 캔에 들어있다고 했다.
마트에 간 김에 기를 찾았는데 정말 캔으로 되어있긴 했는데, 캔에 들어있는 올리브오일 같은 타입이 아니라 통조림용 캔으로 되어있어서 사용하기 불편해 보였다.
그때는 오일이 거기서 거기겠지, 무엇보다 사용하기 불편하면 쓰겠나 싶어서 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먹는 오일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다시 마트로 향했다.
몇 종류의 브랜드가 있었는데 성분표를 보니 하나는 Dairy Cream이었고 다른 하나는 Milk Fat이었다.
둘의 차이는 정제의 정도에 있었는데 그중 크림이 덜 정제되었고 향에 따라 사람마다 선호하는 성분이 다르며 발연점이 높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챗GPT에게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줘서 비교가 훨씬 쉬워진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나를 위해 인색해질 때면 종종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안약을 가지러 냉장고까지 가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하며 몇십 분을 누워계신다고 하셨다.
그 길이 천리길처럼 느껴지시겠구나… 아니, 몸을 일으키는 그 한 번의 동작이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가능하구나…
나도 손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면 생각만 많고 몸은 움직이지를 않아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제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벌써 이러면 안 되지, 싶은 마음으로 귀찮음을 털어내고 에너지를 모아 한 동작이라도 해내려고 한다.
그러면 그다음은 훨씬 쉬워진다.
뒤처리가 귀찮아서 프라이도 하지 않고, 충전병 때문에 블루투스 스피커도 모셔놓고, 접시도 쓰던 것만 쓰고, 몸에 좋대서 사놓은 오일도 사용하기 불편해서 미뤄두고… 이 모든 걸 오늘 아침에는 다 극복(?)했다.
여유 있는 아침이 가져다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