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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6.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⑯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모든 인간은 예술가

 궁금한 게 있다. 사람들은 왜 내 그림을 좋아할까? 옆에 있던 수행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고. 미술은 몰라도 고흐는 다 아니까, 흥미로운 정답이 쏟아질 거라고 자신했다. 성격이 싹싹한 만큼 명쾌했다. 좋은 생각이라 바로 받아들였다. 수행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행인들을 즉석 인터뷰했다. 생전 처음 보는 스마트폰은 신기했다. 내가 살던 때에도 전화는 있었다.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1847~1922)이 1876년 세계 최초로 전화를 발명한 덕을 나도 봤지만, 그때 전화는 전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생각을 하던 차에 수행원이 달려왔다. 인터뷰가 끝났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녹음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객관식도 아니고 즉흥적인 주관식 물음인데도 그럴듯한 대답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람들이 밝힌 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두서없이 소개하면 이렇다. 

감정이 격해지고 호흡이 빨라진다. 

슬프고 외롭고 쓸쓸해진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인간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철학적인 시각, 사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희로애락이 눈으로 인식돼 강렬한 자극을 선사한다.

그림을 보는 순간, 사색의 늪에 빠진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생각이 난다. 

미술이라는 예술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림을 통해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연민의 정이 느껴져 동정심이 솟구친다.

인간은 홀로 나서 홀로 죽는다는 삶의 속성을 곱씹게 만든다. 

고독이라는 감정 세계에 푹 빠져들게 한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떤 것인지, 실감 나게 한다.

색과 형체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효과를 구현한 마법 같다. 

인간의 심리상태를 시각적인 수준에서 관찰하고 음미할 수 있게 한다. 


 답변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 정도로 정리하자고 수행원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답변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었다. 모든 인간이 예술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세상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자화상캔버스에 유화, 57.7 x 44.5cm, 1889, 워싱턴 D. C 내셔널 갤러리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생레미 시절 그린 자화상인데, 푸른 색과 노란 색이 나를 사로잡았다. 


#환생 여행을 끝내며

 37년간의 내 삶은 가난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영혼이 수정처럼 맑게 빛나도록 날마다 초심에 먼지가 묻지 않게 닦고 또 닦았다. 나의 붓질은 물감 덩어리가 아무렇게나 취(醉)한 결과가 아니다. 내 마음대로 물감을 덕지덕지 눌러 바른 것은 더욱 아니다. 붓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제된 율동에 맞춰 숙련된 스타일로 내면의 소리를 정직하게 물감에 실어나른 결과다. 내가 곰 삭혀 본능적으로 연출한 붓놀림은 내 영혼이 현실 세계로 얼굴을 내민 자취다. 


 흔히 내 그림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한다. 절망과 고독, 광기가 어른거린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죽음 예찬론자는 결코 아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는 빛을 무력화시키는 어둡고 칙칙한 색도 있지만,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밀밭처럼 광채를 뽐내는 탐스러운 금빛과 싱그러운 녹색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적막한 공간적 배경도, 불길한 기운을 몰고 오는 상징의 출현도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현실의 벽을 넘어 희망의 내일로 나아가려는 숙원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찰나에 불과한 현생의 계단을 딛고 영생이 기다리는 내생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내 꿈이 이 그림에 아로새겨져 있다. 나는 죽음으로써 삶을 되찾기를 소망했다. 이번 환생 여행의 행운도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광기는 미칠 광자 광기(狂氣)가 아니라 빛 광자 광기(光氣)다.              

이제 생전의 삶에 대한 추억을 뒤로 하고 내 이름을 딴 반 고흐 미술관으로 떠날 시간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환생 여행에서 내 이름이 걸린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마땅한 도리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환생 체험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언제나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수행원이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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