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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5.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②삶과 죽음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삶과 죽음     


#나에게 삶과 죽음은 동일체

 나의 삶은 곧 죽음, 나의 죽음은 나의 삶. 고로 나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날은 1890년 7월 29일이다. 자살 시도를 하고 이틀이 지나 숨이 멎었다. 자살을 감행한 날과 실제로 자살이 생물학적으로 확정된 날 사이의 30시간이 넘는 시차, 이는 어찌 된 영문일까. 그것은 아마 정신 줄이 오락가락한 혼미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집게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다고 당겼는데 총알이 내 심장을 비켜 스치듯 몸속으로 들어가 즉사(卽死)는 면했지만 결국 치명적인 장기 손상과 과다출혈 후유증 끝에 사후세계로 빨려 들어간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느낄 수 없고, 말할 수 없었지만, 30여 시간 내내 반복된 혼절은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극한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죽음의 문을 두드렸으나 문이 열리기까지 그 시간은 나를 억겁의 무게로 짓누르지 않았을까. 3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나를 두고두고 괴롭힌 간난신고(艱難辛苦)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질었다. 참으로 가혹한 37년 4개월 30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술회일 뿐, 정작 나는 손가락 마디에 걸린 방아쇠가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진 찰나, 끝없는 평화와 환희로 충만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침잠(沈潛)의 세계와 만난 나는 이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삶이 이런 것일까.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것이다.   


작자 미상의 몽테뉴 자화상캔버스에 유화, 14.5 x 13.2cm, 1578년경콩데 뮤지엄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콩데 뮤지엄은 파리 근교 샤또 드 샹티 성()안에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또 다른 이유

 내가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게 된 데에는 한 인물의 영향이 컸다. 바로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겸 사상가인 몽테뉴(1533~1592)다. 그는 인간애에 심취해 인간의 가치를 탐구한 사람으로 1580년 군더더기 없는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낸 산문집 ‘수상록’으로 필명을 떨쳤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 길이라고 갈파했다. 그는 죽음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죽음은 시간이 정지되는 종말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영원히 흐르는 영속성을 지향한다고 규정했다. 죽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구속과 남의 지배, 간섭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온 나로 하여금 기꺼이 죽음을 껴안도록 사생관(死生觀)을 돌려놓았다. 내가 자살을 결심한 이유다. 자살은 내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영원한 자유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찾는 길이기에.  

 대승불교 경전인 반야심경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어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라 둘 사이에 구분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 개념도 내 결심을 거들었다. 


몽테뉴가 저술한 수상록의 일부분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환생 여행 초대장

#나는 사랑에 약하고 겁 많은 소띠

 나는 지금부터 168년 전인 1853년에 태어났다. 서른일곱에 죽었으니, 올해가 131 주기다.  십간(十干, 하늘의 이치를 닮은 10가지 동물의 색)과 십이지(十二支, 땅을 지키는 12가지 동물)를 더한 육십간지(六十干支)로 따지면 1853년은 계축년(癸丑年), 검은 소의 해다. 십이지에서 두 번째 동물인 소는 신의와 정직, 근면, 성실한 행동파를 상징한다. 생전의 내 인생은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죽는 그 날까지 좋아하는 그림에 올인했다는 점에서 우직한 소의 근성과 흡사하다고 해도 되겠다. 사랑에 약하고 겁이 많다는 소의 유전적 기질도 나를 빼닮았다. 그러나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소의 붙임성은 나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육십간지 풀이는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갱과 나는 어긋난 팔자

 그럼에도 고갱과 나 사이에는 사주팔자 궁합 풀이가 족집게처럼 들어맞으니, 육십간지에 목을 매는 사람들 심정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고갱은 나보다 5살이 많은 1848년 무신년(戊申年) 생(生)으로 노란 원숭이띠다. 소띠와 원숭이띠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십이지로 해석한 두 띠의 조합 운세는 상호 유보적이고, 이해조정이 가능한 공통분모가 없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1888년 10월, 내가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갱과 이루고자 했던 예술적 동반자의 꿈이 2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난 것을 마치 인공지능이 예견이나 한 것처럼 적중시켰으니.       


 어쨌거나 땅속 생활이 하(何)세월이라, 육십간지 놀이로 무료함도 달래고 모처럼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참고로 육십간지는 3000년 전 중국의 갑골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체현상에 기초한 연도를 셈하는 방법이다. 한 해의 운세와 인간의 운명을 내다보는 역학적 점괘로 한, 중, 일, 베트남 국민에게 친숙하다.       


프랑스 화가 루이 모리스 부테 드 몽벨(1850~1913)이 1891년에 찍은 폴 고갱의 사진모리스 드니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내가 묻힌 곳

 내가 묻힌 이곳은 파리 북쪽 교외의 작은 시골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동묘지다. 나 말고도 유명 인사들이 많이 잠든 곳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처음으로 무덤 바깥으로 나들이를 나가게 된다. 이름하여 ‘환생 여행’이다. 여행 기간은 일주일,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교통편은 타임머신. 숙식 일체가 제공되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타임머신의 속도는 1초에 30만km를 가는 빛의 속도와 같다고 들었다. 현재에서 미래로, 현재에서 과거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운송 수단이니, 눈 깜짝할 새처럼 빠를 것이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수 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번 여행에 거는 기대는 불문가지이다. 


 며칠 전, 무덤지기로부터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제목이 ‘거장들의 환생 여행’이었다. 미술사를 빛낸 불멸의 화가들을 기리기 위해 기획한 연재 행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생전에 팔린 그림이라고는 단 1점, 가난에 찌들어 평생 돈이라고는 만져보지 못했던 무명 화가였던 내가 거장이라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한 초대장 수신인 칸에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기를 반복하다 겨우 잠을 이뤘다. 초대장에 따르면 내일 나는 무덤 밖으로 나간다. 무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죽은 뒤 맞이한 삶인 내생(來生)에서 잠시 현생(現生)의 세계로 시공간(時空間) 이동을 하게 된다.      


#생전의 삶에 대한 소회(所懷)

 익히 알려진 대로, 내 삶은 파란만장했다. 나의 분신, 내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인생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도 기꺼이 의미심장한 가치 부여를 아끼지 않은 것도 그런 안타까움이 사무친 동정심에서 비롯됐을 거라 믿는다. 무어라 감사의 말을 다 할 수 있을지, 그저 황송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살아서도 그랬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울림이 있는 감동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목회자가 되기를 중도 포기하고, 가난한 무명의 화가로 살았던 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티끌보다도 작고 금방 사라지는 부질없는 미물(微物)이라,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의 순리를 되새기고 닮고자 하는 자를, 나는 우러러본다. 


 지금이야 내가 이른바 유명 화가로 대접받는다지만, 나는 본디 수줍어 나서기 싫어하는 샌님 같은 성격이라 누가 아는 체하는 걸 쑥스러워하는 편이다. 내가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꿈만 같은 환생 여행의 길목에서, 굳이 독백형식으로 나의 모든 것을 고백하려는 것도 숫기가 없어 으스대기를 부담스러워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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