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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un 25. 2021

빈센트 반 고흐의 환생(還生) 여행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⑤좌절된 선교의 꿈

과거를 떠나(미래로 나아간(화가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좌절된 선교의 꿈     


#선교로 방향을 정하다

 앞서 내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이라고 밝힌 못다 이룬 첫사랑의 상처에 이어 닥친 해고 통보는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물론 나중에 전업 화가로 한 번 더 항로를 수정해 삶이 다할 때까지 그림에 매진했으나 한때 나는 목회자가 되고자 했다. 7년가량 몸담았던 화랑 업무는 천성이 붙임성과는 거리가 먼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고객들의 비위를 기꺼이 맞춰야 하고, 이해타산에 밝아야 하는 상업갤러리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가풍(家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득문득 선교의 길을 더듬어 왔던 터에 인간구원을 삶의 목표이자 업(業)으로 삼는 성직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종교의 힘에 기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삶은 곧 스스로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자기 해탈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또 사랑을 갈망하는 대신 사랑을 베푸는 인생 속에서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고픈 이타적인 소신도 영향을 미쳤다. 


 꿈은 원대하게 꾸라고, 처음에는 신학 입문을 두드리고자 했으나 까다로운 절차와 길고 험난한 수련 과정에 지레 겁을 먹고 전도사로 방향을 틀었다. 눈높이를 현실적으로 낮춘 나는 3개월간의 단기연수를 끝냈으나 끝내 전도사로 발령을 받지 못했다. 교리해석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은 데 따른 업보(業報)라면 업보였다. 


빈센트 반 고흐낮잠캔버스에 유화, 73 x 91cm, 1889-1890, 오르세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흐는 농부 화가’ 밀레를 흠모했다밀레가 1866년에 그린 낮잠’(아래 그림 참조)의 제목과 소제구도를 모방해 그린 그림이다    


#사목활동과 교단(敎團)의 시기심

 까짓것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그따위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냐는 심정으로 평신도도 할 수 있는 사목(司牧)활동을 통해 선교에 나서기로 다짐했다. 기왕이면 나처럼 못 배우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편이 훨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탄광촌을 선택했다. 내 조국 네덜란드와 이웃 나라이자 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언어장벽도 없는 벨기에 남서부 탄광 지대인 보리나주로 곧장 달려갔다. 훗날 그림에 미쳐 지내던 아를~생레미~오베르 시절 빼고는 이때가 가장 보람찼을 정도로 선교활동에 푹 빠져 행복감을 느낄 즈음, 발목 잡는 일이 또 생겼다. 


장 프랑수아 밀레낮잠종이에 파스텔, 29.2 x 41.9cm, 1866, 보스턴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광부들의 순수한 마음을 꿰뚫고 있어 자연스레 그들, 약자 편에 선 나를 교단이 시기한 것이었다. 시기심은 종교계라고 예외가 아니란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물론 공식적인 교단의 반응은 사목 방법이 너무 전위적이라 선교 본연의 정신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아니, 무슨 놈의 선교에도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식의 교단의 권위적인 횡포가 나를 괴롭혔다. 하는 일마다 고춧가루를 뿌리는 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분을 삭이다 못해 자포자기에 빠질 무렵, 섬광(閃光)이 예지(叡智)처럼 뇌리를 스치며 나를 구원했다. 

‘그림!’ ‘그림’을 그리자! 1880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마침내 나의 그림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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