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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①금산(錦山) 인삼 봇짐장수

by 박인권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①금산인삼 봇짐장수


#가족 건강 보양식품이었던 인삼

지금이야 인삼을 마트에서도 살 수 있고 인터넷 쇼핑으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인삼은 귀하디 귀한 몸보신(補身) 식품이었다. 당시 인삼은 큰맘 먹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대표적인 가족 건강 고급 보양식품이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봇짐장수

지금처럼 전국적인 유통망도 없던 시절이라 약재시장이나 산지(産地)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집으로 찾아오는 봇짐장수에게서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봇짐장수는 멀리 타지방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걷고 또 걸어서 일일이 가정방문을 해야 해,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때가 되면 봇짐장수가 찾아왔다. 인삼의 고장 금산(錦山) 출신 아주머니였다.


금산에서 내 고향 대구 대명 5동 주택가까지는 151km, 자동차로 2시간 15분이 걸리는 꽤 먼 거리다. 자동차보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해 터미널에 내려 시내버스에 다시 올라 동네 어귀에 도착해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아마 3시간을 훌쩍 넘는 길고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마흔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무게가 만만찮았을 봇짐까지 머리에 이고, 들기를 반복했을 테니, 육체적인 피로야 말해서 무엇하랴.


1. 밭에서 캔 인삼..jpg

밭에서 캔 인삼. ⓒUser:Lohri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금산 아주머니와 충청도 사투리

내가 그 아주머니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내당동 양옥(洋屋)에 살 때였다. 이곳 대명동 기와집으로 이사한 뒤로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인삼 꾸러미를 이고 우리 집에 왔는데, 1년에 서너 차례 인삼을 달여 먹었다. 충남 남동부의 금산은 예로부터 인삼으로 유명한 곳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인삼의 80%가 금산에서 재배될 정도로 금산, 하면 인삼이고 인삼, 하면 금산이다. 어머니보다 네댓 살 손위인 인삼 장수 아주머니는 1년에 여섯 번이나 우리 집을 드나들어 웬만한 친척 이상으로 가까웠다.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를 느릿느릿하게 구사했는데, 중간중간에 호남 북쪽 말투가 섞인 듯, 안 섞인 듯 들리기도 했다. 전라북도 무주군과 맞대어 있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일 것이다. 계셔유, 하고 인기척을 하며 집안에 들어와서 대청마루 턱에 앉아 봇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와 반갑게 이야기보따리를 나누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은 손저울과 인삼값 흥정

요즘도 그렇지만 인삼은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라 봇짐장수 아주머니는 늘 작은 손저울을 갖고 다녔다. 무게로 인삼값을 정한다지만, 최종 가격은 흥정에 따라 결정됐다. 우리 집은 단골이라는 혜택에다 봇짐장수의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 늘 도매가나 다름없이 인삼을 살 수 있었다. 봇짐장수는 말리지 않은 수삼(水蔘)과 말린 건삼(乾蔘), 두 종류를 취급했는데, 어머니는 수삼만을 고집했다.


그것은 우리 식구들이 인삼을 복용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흐르는 수돗물에 인삼을 깨끗이 씻은 다음 3분의 2는 대추, 당귀와 함께 약탕기에 넣어 달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얇게 채 썰어 꿀에 재어 큰 유리병에 보관해서 한 숟가락씩 떠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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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PARK IN KWON


#구식 약탕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질흙으로 만든 구식(舊式) 약탕기에 수삼을 달이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내 기억으로 한나절은 걸렸던 것 같다. 강 불로 시작해 중불로 불기운을 가다듬은 뒤 다시 약 불에서 은은하게 몇 시간을 달이려면 보통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게 아니다. 불 조절에 잠시 한눈을 팔다가는 약탕기 몸통 위에 얹히듯 덮인 얇은 한지 커버가 펄펄 끓는 인삼 수액(水液) 방울 세례에 구멍이 뚫리거나 밀어 올리는 압력에 날아가 버리기 십상이다. 인삼을 달일 때, 어머니의 신경은 온종일 약탕기에 쏠렸다.


#인삼 달인 물의 쓴맛과 사탕의 단맛

다 달여진 인삼 물은 사기로 만든 사발(沙鉢)에 부어 마셨는데, 어린 나에게 그 쓴맛의 느낌은 지독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숨을 참고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야 먹기가 덜 불편하다고 망설이는 나를 다독였다. 사발에 인삼 진액(津液)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미리 껍질을 벗겨 손에 쥐고 있던 사탕 한 알을 얼른 내 입 속에 넣어주셨다.


수삼은 재탕(再湯)은 기본이었는데, 어머니는 삼탕(三湯)까지 한 뒤 흐물흐물해진 수삼 알갱이를 버리지 않고 흰 설탕과 함께 우리 형제 앞에 내놓았다. 진액이 다 빠져나간 수삼 알갱이를 설탕에 찍어 먹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꿀에 잰 수삼

꿀에 잰 수삼은 꽤 오래 먹을 수 있었다. 생각날 때마다 한 숟가락씩 퍼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달인 수삼 물의 쓰디쓴 맛과 달리 달짝지근한 단맛과 함께 아삭아삭한 식감이 식욕을 돋우었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셨는데 몸에 좋은 수삼과 꿀, 둘을 한꺼번에 섭취한다는 충만감이 남다르셨던 게 아닐까, 한다. 아버지는 또 인삼 달인 물을 식혀 냉장고에 넣어두고 물 대신 자주 마시기도 하셨다.


#인삼 젤리와 인삼 사탕

마음씨 좋은 봇짐장수 아주머니는 우리 형제를 위해 인삼을 조청과 섞어 찐 말랑말랑한 인삼 젤리와 인삼 사탕을 넉넉하게 챙겨주기도 했다. 어쩌다 수삼을 사지 않을 때도 인삼 젤리와 인삼 사탕 서비스는 그대로였다. 내가 봇짐장수 아주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등학교 1, 2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10년 남짓한 인연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 기억에도 선명한 봇짐장수 아주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흔이 훌쩍 넘었을 연세다.


#나의 최애(最愛) 채소, 신선초

식성(食性)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인삼의 쓴맛에 길든 탓인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약초(藥草)를 좋아하게 됐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맨밥에 쌈을 싸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그럴 때 독특한 쓴맛이 나는 신선초(神仙草)는 나의 최애(最愛) 채소다. 마트에서 수삼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서 한 팩을 사 냉장고에 넣어두고 날 것 그대로 하나씩 꺼내 씹어 먹는 것도 나의 음식 취미 중 하나다.


요즘에는 인삼 씨를 산속에 뿌려 재배한 장뇌삼을 마트에서 팔기도 하던데, 씨알이 가늘고 작은 데다, 씹을 때 나는 톡 쏘는 향이 별로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삼보다 비싸고 효능도 낫다는 홍삼이 대세인 시대이지만, 여전히 수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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