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소년이 온다>
"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훼손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훼손됐던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고통을 많이 느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울기도 많이 했는데. 최근 한 번역자가 쓴 글을 읽었다.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폭격이 일어나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버스를 탔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고.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이 글이 나에겐 최근에 들은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됐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느낀 고통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구나’를 느꼈다. 다시 소설을 쓴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한강, YES24 인터뷰
1. 스웨덴 한림원 평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agility of hman life"
스웨덴 한림원의 평은 간결하면서도 적확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에 나는 사실 스웨덴 한림원의 '안목'에 놀랐다. 이 사람들 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네!' (They know what they're doing!')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벨문학상의 명성이야 따로 논할 필요도 없겠으나 탁월한 선정평에 이전 수상작들까지 다르게 다가왔다.
이어, 한림원은 "한강은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라고 평했다.
5.18 광주라는 엄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훼손되면 안 되는 것들이 훼손 돼버린"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야기를 "실험적인" 2인칭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소년이 온다>를 염두에 둔 평이 유력해보인다. (물론 제주 4.3을 그린 <작별하지 않는다>도 근접하다.)
노벨상위원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한강 작가의 출판 이력
2. 짧다.
장편소설이지만 200여 페이지 남짓으로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한없이 침잠하게 하지만, 일단 첫 페이지를 펼치면 헤어 나오기 힘들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이미 당신은 소년 '동호'를 소환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내 안의 무엇인가,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변한 게 느껴질 것이다.
3. 가슴이 아리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나는 이 책을 10년 전에 읽었다. 다른 책은 좋아하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읽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다. 단 한번 읽었고, 그 후 다시 펼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 읽으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을까? 참혹함을 그려나가는 문장이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더 아프다. 한림원에서 평한 "시적 산문"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시로 등단했고 시집도 낸 작가라 역시 산문도 운문 같다. 독자가 이 정도로 아프다면 작가는 어떘을까?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면서 "압도적 고통"을 겪었노라고 밝혔다. 세 줄 쓰고 울고, 세 줄 쓰고 울고.. 그 어마무시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4. '살아라'
작가에 따르면 에필로그가 아니라 5장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고심 끝에 "살아라"는 말로 책을 탈고했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것 처럼 "그 모든 것을 불구하고도 우리 안에 살아갈 힘이 있다"라고 말이다. (정확한 마지막 구절을 찍어서 올리고 싶은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엄마가 냉큼 빌려가셨다.)
5. 책 표지마저 예쁘다.
(주문폭주로 증쇄하면서 책 디자인 바꾸지 않길!) 소년이 안개꽃 속에서 어느 순간 나타나줄 것만 같다. '맑고 깨끗한 마음, 영원한 사랑'이라는 안개꽃의 꽃말처럼.
5.18에 제주 4.3까지 연달아 아픈 상처에 대한 작품을 쓴 작가는 앞으로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했었다.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
"사람이 인생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살아갈 힘이 있다는 것"
이미 그런 작품을 써오시고 계십니다, 한강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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