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흰> 한강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
한 단어씩 적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 책을 꼭 완성하고 싶다고, 이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 줄 것 같다고 느꼈다.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지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며칠이 지나 다시 목록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단어들을 들여다보는 일엔?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 시작을 미루었다. 팔월부터는 이 낯선 나라의 수도(폴란드 바르샤바)로 잠시 옮겨와 세를 얻어 살기 시작했다. 두 달 가까이 시간이 더 흘러 추워지기 시작한 밤,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 때문에 물 한 컵을 데워 알약들을 삼키다가 (담담하게) 깨달았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 들어간다.
.... 중략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을 건넬게.
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사진: Unsplash의Chandler Crutte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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