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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고 싶다'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할까?

'보고 싶다'는 날 것의 포장되지 않은 감정이다.

by 루이보스J

왜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할까?


1시간짜리 요약본으로만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뒤늦게 정주행 했다.


'보고 싶다'는 '사랑한다'말의 다른 표현일까?


드라마 속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염창희가 여자 친구와 다툰다. (그리고 바로 헤어졌다) 그는 늦은 시각 남자선배와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여자친구에게 따졌고 여자친구는 "원래 문자는 상냥하게 하는 거다"라고 항변한다.

이에 분노한 염창희는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넌 보고 싶다는 말도 막 하고 그러냐"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랑 같은 거 모르냐?”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왜 ‘보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보다 더 진하게 다가올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TV 속 연예인도, 고객센터 직원도, 마트 계산원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기계적인 목소리로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걸 들을 때면, 이 말이 얼마나 희석되고 오염되었는지 실감한다. 애초에 사랑이란 감정은 깊고 풍부한데, 우리는 그것을 인사처럼 소비하고 있다.


‘사랑해’는 그렇게 무뎌졌다. 원래 진한 원액이었지만, 점점 옅어졌다. 0.01초 동안 향이 나는 것 같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싸구려 향수처럼. 사랑은 언제부턴가 ‘포용’과 ‘배려’라는 포장 속에서 너무나 흐릿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어떤 고객센터 직원도 나에게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


보고 싶다’는 말은 날 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감정이다. 사랑이란 말이 종종 관용적이고 형식적이라면,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라는 본능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멀어지면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반대로 물리적으로 멀리 있어도, 마음이 가까우면 ‘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생각해 보면 영어도 비슷하다.


우리는 "I love you"라는 말을 생각보다 가볍게 사용한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Oh, I love this!" 하며 좋아하는 음식이나 영화에도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I miss you"는 다르다.

이 말은 언제나 상대방의 부재를 전제한다.

I love you는 대상이 눈앞에 있을 수도 있지만, I miss you는 그렇지 않다. "사랑해"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지만, "보고 싶다"는 말은 상대가 곁에 없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I miss you"가 "I love you"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결국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보다 더 본능적이고, 더 원초적인 감정이다.


‘사랑해’는 외피를 쓴 단어지만, ‘보고 싶다’는 민달팽이다.
날것이고, 만져지는 감정이다.
포장 없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정이다.


사랑은 미지근하게 식을 수도 있지만, 그리움은 순간적으로 폭발한다.
사랑은 안온하지만, 그리움은 늘 조금 아프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건 마음 한편이 비어 있다는 뜻이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라는 의미다.


표지사진:사진: Unsplash의 Brett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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