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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ul 16. 2023

소유모드, 존재모드 그리고 우리말

문득 그 책, <소유나 존재냐> 에리히 프롬

브런치를 접속하면 ‘요즘 뜨는 브런치북’이 올라온다. 상위권에는 늘 이혼이야기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배우자의 배신에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은 경험을 풀어낸 글들이 대부분이다. 몇 편 읽어보니 인기 있는 이유를 금방 알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본 극적인 상황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글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도 많이 달려있다. (모든 결혼은 아닐지라도 상당수의 경우) 너무 좋아서, 더 이상 떨어져 있기 힘들어서 서로의 삶을 포개기로 약속한 두 사람은 어쩌다 쓰라린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아니,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바로 에리히 프롬의 그 유명한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1976)를 읽으며.  

"... 구애 기간 중에는 (중략) 양쪽 모두 활기를 띠고 매력적이며, 흥미 있어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양쪽 다 아직 상대방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각자의 에너지는 <존재>하고 있다. 즉, 이 에너지는 상대방에게 주고 자극하는 데 쏠려있다.  결혼의 행위와 함께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한다. 결혼이라는 계약으로 파트너 각자에게 상대방의 육체, 감정 및 관심의 독점권이 주어진다. 사랑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즉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더 이상 상대방에게 끌려들어 갈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사랑스러우려고 노력하거나 사랑을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중략) 각자는 대개 상대방이 변한 원인을 찾으며 속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들은 서로가 사랑할 때의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이미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즉,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랑하지 못하게끔 한 과오임을 알지 못한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대신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즉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 등을 함께 <소유>하는 것에 안주한다."


"... 우리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사랑은 하나의 사물, 즉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물질이 될 필요가 있다.  사실은 ‘사랑’과 같은 그러한 사물은 없다.  '사랑'은 추상명사이며 아무도 이 여신을 본 사람은 없다.  실제로는 ‘사랑의 행위’만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것은 생산적인 능동성이다.  (In reality, there exists only the act of loving. To love is a productive activity.) 그것은 사람, 나무, 그림, 사상 등에 마음을 쓰고, 알고 , 긍정하고,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의 (그녀 또는 그것의) 생명력을 증대시키고 소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자기를 재생시키고 자기를 증대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중략) 소유모드에서 사랑이 경험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을 제한하고 감금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유모드 (having mode)와 존재모드(being mode)는 어떻게 다를까?


소유모드 (having mode)

프롬이 설명한 소유 모드는 소유, 업적, 성공의 외적 지표에 우선순위를 두는 마음의 상태다. 소유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주로 물질적 획득과 축적,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성취감을 인식한다. 인간관계도 도구화되어 본질적으로 거래적(transactional)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타인을 진정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고유한 존재라기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소유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존재모드 (being mode)

반면, 존재 모드에 있는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자기 계발과 진정한 잠재력의 실현에 중점을 둔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 열정, 고유한 본질에 부합하는 삶을 추구하며 진정성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서도 공감, 연민, 진정한 연결,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중시하고, 서로의 성장을 지지한다.  


프롬에 따르면 우리는 존재 모드로 살아갈 때 내면의 깊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 물질적 소유를 축적하기보다는 경험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현재의 순간에서 만족을 찾는다.  삶의 소박한 기쁨을 더 깊이 인식하고 자신의 목적과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소유모드'에 깊이 물들어 버린 듯한 우리는 단지 망각하고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존재 모드에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have'와 같은 소유 명사를 쓰는 영어 (다수의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와 달리 우리말에서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존재한다의 뜻인 ‘있다’라고 쓰지 않는가?


꿈이 있어요. vs.  I have a dream

가족이 있어요. vs. I have a family.

갈 곳이 있어요.  vs. I have a place to go.


사랑도 마찬가지다.


“I have a loved one" 대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로 말한다.  


우리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성 간의 사랑이든 부모 자식 간에 사랑이든 우리는 결코 누군가를 소유할 없다는 것을.  우리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그를/그녀를 다만 동사(verb)로서 '사랑'할 수 있을 뿐.  


보통 언어는 인식 체계를 반영한다고들 한다.  다른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그저 ‘소유’라는 미몽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된다.  삶의 양식과 사랑 모두에게 본래 제 자리인 존재 모드를 되찾아주면 될 일이다.


커버 사진: UnsplashSimon Berger


#소유#존재#사랑#결혼#자유#에리히프롬#소유냐존재냐#책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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