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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Aug 18. 2023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그 책 그 구절, 한강 [소년이 온다]

꼬르륵…

별로 한 것도 없는 날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의 감각.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한참 전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을 읽고 난 이후부터 가끔씩 이 대목이 번뜩 떠오를 때가 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게 무섭고, 배가 너무 고파 내 입으로 ‘혹시 밥이라도 들어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내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지난가을 이태원 압사 참사로 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엄마가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순간에도.  


올봄 이모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돌아가신 이모보다 연로하신 첫째 이모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뒤늦게 도착하셨다. 시장하실 테니 뭐라도 드시라는 친척들의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던 이모가 한참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 조각을 잽싸게 입에 넣으셨던 그 짧은 찰나에도.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장례식장 구석에 앉아 달리 할 것도 없던 나는 이 구절을 영어로 옮겨보았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There's something shameful about eating?

‘음.. 맘에 들지 않아.’


There's often a sense of shame connected to the act of eating.

There's a sense of shame associated with eating.

The act of eating can evoke feelings of shame.

Eating can sometimes carry a feeling of shame.

‘조금 낫군.’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겪을 때면 배고픔의 감각마저 죄스럽게 다가온다. 폭압적인 학살의 한복판에서 나만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 기꺼이 내 생명을 내어주면서라도 살리고 싶은 아이를 잃었는데도 입맛이 도는 눈치 없기 그지없는 몸뚱이. 나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마지막 길, 그 몇 시간도 참지 못하고 허기에 굴복한 언니까지.


다행히 시간이 약이다. 이제 이모는 부끄러움 없이 식사를 하실 테다.  보물 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도 지금쯤은 부디 조금은 괜찮아지셨길 바라본다.


사실 배고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배고픔은 생명이다.  음식뿐이 아니다.   사랑, 우정, 꿈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에 대한 갈망도 배고픔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몸이 영양분을 갈망하듯, 우리의 영혼은 따뜻한 인간관계와 열정의 충족을 갈망한다. 육체적이든 감정적이든 배고픔은 우리가 살아 있고 인생이라는 여정에 맹렬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활력의 신호다.  어떤 형태의 배고픔이든 허기가 있기에 우리는 열정을 불태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배고픔을 포용하는 것은 곧 삶을 포용하는 것과 같다.


배가 고프다.

네가 고프다.

일이 고프다.


무엇이든 허기를 느끼는 우리,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

 Craving anything that ignites our hunger, we affirm our existence in the here and now.


커버사진: UnsplashSiegfried Poepperl

#한강#소년이온다#허기#배고픔#갈망#생명#사랑#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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