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6번째 기업 최종 면접 당일,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다. 외국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물류업을 영위하고 있는 6번째 기업의 본사는, 그의 집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3시간이 넘게 걸린다. 6번째 기업은 10시까지 도착하라고 안내했다. 그는 새벽 5시부터 눈이 떠졌다. 만약 6번째 기업에 최종 합격한다면 대중교통 출퇴근은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물류 창고를 운영하는 업의 특성인지, 6번째 기업은 외곽 지역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집에서 서울 중심부까지 지하철 약 1시간, 중심부에서부터 6번째 기업이 위치한 지역까지 버스로 약 1시간, 해당 지역에서 또 외곽까지 버스로 1시간 이렇게 총 2번 환승해야 하며 소요 시간은 3시간이다.
서울 중심부에서 버스로 갈아탄다. 지역을 이동하는 버스, 커다란 2층 버스다. 그는 알맞은 타이밍에 도착한 2층 버스에 기뻐하며, 2층으로 올라간다. 서울로 들어오는 버스였다면 사람이 많았을 텐데, 서울에서 나가는 버스이다 보니 자리가 텅 비었다. 그는 버스의 2층 맨 앞자리, 경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는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시각, 하늘은 저녁 노을빛을 역으로 재생한 듯 서서히 붉어진다. 저 멀리 고속도로 지평선 중간에, 높게 솟은 건물이 하나 있다. 그가 향하는 방향으로 미루어보건대, IT 업계의 건물일 것이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린다. 저 멀리 보였던 거대한 IT 건물도, 어느덧 그의 시야 뒤편으로 사라졌다.
면접 자료를 손에 쥐고 있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이미 한 시간 가량 붙들고 있었고 앞으로도 1시간 반이나 남았다. 해도 다 떠오르고, 2층 버스 앞자리의 경치도 익숙해져 별 감흥이 없다. 그는 잠깐만 보자며,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튼다.
이날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유명 드라마의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 당시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K-드라마다.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두 주인공의 생각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장면이다. 그는 이 장면을 드라마를 볼 때도 감명 깊게 봤었다. 무슨 연유인지 면접장으로 향하는 이 시점에, 유튜브에서 우연찮게 이 장면을 다시 마주한다. 당시의 그에게는 후반부의 대사가 더 인상에 남는다.
A : 그게 나였어도 밀었을 거냐.
B : 니 인생이 왜 그 모양 그 꼴인지 아냐. 머리는 나쁜 게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어서,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 아는 인간이니까 그런 거다.
해당 드라마를 봤다면 누구나 아는 장면이다. 그는 이 장면에서, 이타적인 성향을 대변하는 A의 생각이 자신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그다지 이타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그가 추구하는 사상은 B보다는 A와 가깝다. 하지만 B가 A에게 하는 말은, 현실적이며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작중에서 B는 몰락하긴 했지만 잘 나가는 편이고, A는 B에 비한다면 패배자다. 자신의 처지로 인한 것인지, 그는 B의 대사 하나하나가 그를 향한 것 같다고 느낀다. 지금 6번째 기업 본사를 향하는 자신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러 가는 것일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6번째 기업이 위치한 지역에 도착한다. 2층 버스에서 내려, 조그마한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처음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마을버스가 외곽으로 나갈수록 사람이 적어진다. 마침내 버스가 텅 비어, 그는 창가 자리 하나를 잡고 앉는다. 버스 밖 풍경에 논과 밭이 많아진다. 이제 바깥 풍경은 완연한 시골이 되었다.
마을버스는 논밭 한가운데의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이따금씩 고즈넉한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면 할머니들이 버스에 오른다. 버스 기사는 이 노선을 완전히 꿰고 있는 듯하다. 가끔 버스 정류장에 승객이 없어도, 버스가 출발하지 않고 승객을 기다린다. 그렇게 5분 정도 기다리고 있자면 할머니가 버스에 오른다. 그러면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6번째 기업은, 이런 논밭 풍경에서도 더 들어간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창밖 풍경을 보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착각하여 하차벨을 일찍 누른다. 마을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린다. 허허벌판이다. 그는 잘못 눌렀다고 이야기할까 생각했지만, 버스 기사와 할머니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시간이 남았고 경치도 좋으니, 그는 한 정거장 일찍 내린다.
고작 한 정거장 일찍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실수였다. 한 정거장의 거리가 생각보다 상당히 길다. 원래 정류장에 내리면,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렸을 뿐인데, 걸어야 할 거리가 30분으로 늘어난다.
시간 여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걸어서 30분은 예상치 못했다. 그는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논밭 한가운데, 면접용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용 구두를 신은 그가 잰걸음으로 걷고 있다. 그렇게 15분 정도 걸었을까, 그는 자신의 발뒤꿈치가 까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아직 촉박하긴 하지만 늦진 않을 것 같다. 그는 외투를 벗어 팔에 걸고, 넥타이도 푼다.
뒤꿈치를 희생하여 시간을 벌었다. 그는 그제야 주위를 돌아본다. 넓은 논밭 한가운데,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딱딱한 도로 위에 구두, 시골 풍경에 면접 정장 차림의 그가 섞여 있다. 면접 직전 특유의 긴장과 설렘 탓인가, 풍경이 좋아서인가. 그는 기분이 썩 좋다.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을 찍는다. 면접 가는 길, 나름 새로운 경험이다.
그는 메일로 안내받았던 시간에 맞춰 6번째 기업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