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Jul 02. 2021

구직 준비

 그는 백패커스에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혹시 그들이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항상 물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와 비슷하게 워킹홀리데이를 막 시작한 이들이었고,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 청년들은 일자리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일자리에 거의 절박하다시피 매달리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그와 유럽 청년들은 워킹홀리데이에서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가 달랐다. 그는 '워킹' 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유럽 청년들은 새로운 경험이나 여행 위주의 '홀리데이' 를 더 중시했다. 각자의 나이 및 상황이 달랐으므로 지향하는 점도 달랐던 것이다. 결국 유럽 청년들은 일 찾는 것을 포기하고 4000불 상당의 차량을 구매해서 여행을 떠난다. 그는 떠나는 유럽 청년들과 정든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는 워킹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해야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홀리데이를 즐기는 것이 워킹홀리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동안 철없이 행동했던 것에 대한 그 나름의 사죄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손 벌리는 옵션은 아예 지워버리고, 그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백패커스에서 혹시 운 좋게 추천 형식으로 일자리를 얻게 될까 기대했던 그였으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택도 없었다.


 그는 도서관을 찾아갔다. 호주는 땅이 넓고 공공시설이 잘 되어 있어, 도서관도 큼직하고 깔끔하게 지어져 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워홀러, 학생, 노숙자 등 다양한 이들이 있었으리라. 그는 이 날부터 도서관을 신나게 들락날락하게 된다. 그가 도서관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노트북이 없었다. 그는 예산을 절감하고자, 빡센 워킹 생활이 되더라도 스스로 더 움직여서 커버하자는 생각으로 노트북 없이 호주로 왔다. 그는 USB 내에 이력서 및 중요 서류 몇 가지, 그리고 구글 드라이브에 똑같은 파일들을 넣어 놓았다.


 도서관 내부는 에어컨도 가동되어 굉장히 시원하다. 그는 땀에 젖은 등이 시원해짐을 느끼면서, 빈 컴퓨터 자리가 있나 훑어본다. 자리가 있을 때는 바로 앉고, 없을 때는 기다렸다가 앉는다. 그는 우선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다. 해당 카드가 있어야 도서관 프린터를 쓸 수 있다. 도서관 카드는 한국의 티머니 같은 충전식이다. 자리에 앉아, 배낭은 그의 눈 앞에 놓고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 시작부터 아이콘 밑의 이름, 인터넷을 켰을 때의 화면이 전부 영어다. 그는 겁먹지 않고 자신이 할 것을 한다. 사람은 컴퓨터를 할 때에 화면의 모든 글자를 읽지는 않는다. 그도 자신에게 필요한 텍스트와 버튼만을 골라내 읽었다. 그렇게 해도 호주 컴퓨터 사용에 큰 지장은 없었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돈을 충전하고, 이력서를 뽑는다. 한국에서 뽑아 가져온 이력서가 있긴 하지만, 10부도 되지 않으므로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이력서를 우선 60부 정도 뽑는다. 이력서는 양면으로, 앞 페이지는 Resume(이력서) / 뒷 페이지는 Cover Letter이다. 한국 이력서와는 달리 호주나 영문 이력서는 Cover Letter를 작성한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자기소개서인 셈인데, 한국과 달리 자기소개서 질문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 양식이다. 자신을 표현하게끔 자유로이 적으면 된다. 그는 유튜브에서 본 이들이 이력서 다발을 들고 다니며 상점을 방문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이제 그도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할 때가 왔다. 그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는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출력한 60부의 이력서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일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이전 05화 사람 구실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