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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gito Mar 07. 2024

장모님!!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외로움과 소유

"어머니 힘들게 뭘 준비하라고 해~ 여기서 먹고 가"

"지금 저녁 준비하고 계시대요!! 가볼게요"

"그럼 저녁 먹고 여기 와서 자고 가"

........


부모님 집과 처갓집은 차로 10분 거리다

쉽게 말해 시댁과 친정이 가까이 있다


전 여자 친구는 집이 대구였는데, 가끔 인사드리러 갈 때

멀다 싶었는데, 막상 명절에 갈 거 생각하니 아찔

잘 헤어진거 같다


다행히 우리 집과 처갓집은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이다

처음에는 좋았다

주말에 한 번 갈 때 양가를 모두 방문할 수 있으니..


점심은 처갓집, 저녁은 우리 집에서 같이 먹고

자는 거로 각자 집에서 자는 거로 와이프와 합의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자고, 와이프는 처갓집에서 자고,

아이들은 선택에 맡겼다

엄마랑 잘래? 아빠랑 잘래? 대부분 엄마를 택한다

그럼 나는 토요일 저녁을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다


가끔 엄마는 아이들이 처갓집에서 자는 것을

서운해할 때도 있지만,

뭐.. 인기투표에서 졌으니 체념할 수밖에..


이번주 토요일에 집에 간다고 하면

금요일 저녁에 엄마가 전화 아이들에게

"내일 할머니 집에서 자면 장난감 사줄게" 라며

아이들을 꼬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

두 할머니들이 손자들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장모님도 혼자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오면

힘든다고는 하지만, 내심 좋은 듯하다

힘드실테니 내가 데리고 간다고 하면,

절대 안 보내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 댁에 가는데

가끔 일요일에 일정이 생기면

토요일 당일 치기로 다녀곤 한다


그날도 요일에 일정이 있어서

점심은 처갓집에서 먹고,

오후 5시쯤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저녁 9시쯤에 서울로 오기로 합의했다


오후 4시 반쯤 되니

나는 아이들 옷을 입히며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장모님이 쌀을 씻기 시작했다

설마 했지만.. 무시하고 빨리 아이들 옷을 입


"삼겹살 할 테니 저녁 먹고 가~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한가지게 여기서 먹고 가"


우리 엄마도 혼자 사시는데

그나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는

한 달에 한번 찾아가고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인데

그 효도조차 못 하게 하고 있다


자식이 집 근처 왔는데

처갓집에 하루 종일 있다가

밤에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면

우리 엄마가 느낄 배신감과 굴욕감은

안중에도 없는 거 같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그 후폭풍은 나와 와이프한테 갈 테고

우리 가정을 불화로 만들 텐데..

왜 이렇게 이기적 이실까?


그리고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면

점심에 삼겹살을 먹었으면 되지 않나?

왜 내가 먹지도 않는 닭볶음탕을 점심에 주고

저녁에 삼겹살을 먹고 가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분명히 내일 일정이 있어서

오늘 서울 간다고 했는데

왜 자고 가라고 하는 것인지?

이렇게 우리의 일정따위는 또 무시당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아무 말 안 하는

와이프가 더 밉다


장모님이라서 이해해야 하나요?

만약 반대상황이라면..

시어머니가 저녁 먹고 가라고 해서

처갓집에 얼굴만 비치고 서울로 갔다면

와이프는 울며 난리 부렸을 것이다


결국은 외로움이다

나이 들고 혼자이다 보니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답은 없다

내가 더 이해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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