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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gito Mar 03. 2024

유부남은 설레이면 안되나요?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랑이었네

얼마 전 인스타에 예전에 친했던 여성이 피드에 떴다

" 애기 엄마 닮아서 이쁘네~ 한번 봐야"라고

상투적인 댓글을 달았는데

진짜로 이번주에 보자는 것이었다


10년 전 내가 관리하는 영업장에 프리랜서로 온 그녀는

열정이 넘치른 여성이었다

빌라투자도 하고,

술집 지분투자도 하고

댄스 학원도 다니고,

진동호회도 하고

24시간을 쉬지 않고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나의 첫사랑(?)과 그녀의 남친이 친한 사이였다

나의 첫사랑(?)은 남자를 오해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여우 같은 인간이었다

뭐랄까 모든 남성들에게 인기인이고 싶어 하는 타입?

내가 연애하고 있을 때마다 가끔씩 나타나서

내 여친을 화나게 해서 헤어지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내 결혼식 때 내 바로 오른쪽에서 사진도 찍었다


아무튼 그녀는 나의 첫사랑의 존재로 짜증 나 있었다

내 첫사랑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눈에 훤했다

늦은 시간에 힘들다고 연락했을 테고

새벽에 잠깐 보자고 했을 테고

어디 드리이브나 가자고 했을 테고

본인은 헤어졌다고 했을 테고..


나의 악감정과 그녀의 짜증이 만나

대화가 너무 잘 통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 보니

새벽 2시였다

그 후로 3~4번 정도 더 만났다


그리고 12월 말에 회사에서 송년회를 했다

눈이 엄청 온 날이었다

모두들 집에 가고  우리 둘 만 남았다

같은 방향이라서  택시를 같이 탔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녀의 집 앞에서 같이 내렸다


나는 쿨하게 "잘 들어가~"라고 하고

뒤돌아 손을 크게 흔들었다

눈으로 하얗게 가득 덮인 조용한 새벽 골목에

그녀가 혼자 서 있는데

무엇인가 영화 속은 한 장면 같았다


나도 모르게 우정의 허그를 했다

전자 팔 치 찰 정도의 꽉은 아니고 팔을 크게 벌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등을 토닥이는 정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간다~라고 했는데,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했다

아무튼 뻘쭘했지만, 다시 손을 흔들며

집으로 왔다


그 후 2~3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됐다

각자 애인이 있었기에, 서로 애인 흉을 보며 친해졌다

솔직히 만나면 투정만 부리는 여친보다

술도 잘 먹고 털털한 그녀가 더 편했다

그리고 그녀는 노래방 좋아했다

둘이 만나면  1차 고기 먹고, 2차는 항상 노래방이었다

어느 날은 노래방에서 나온 뒤 살짝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지금 들어가기에는 애매하게 먹었었다


"우리 집 가서 한잔 더 하자"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why not?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맥주 와인 등 종류가 다양했다

각자 맥주 3캔씩을 더 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


30 대 중반임에도 남녀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1차 저녁, 2차 노래방, 3차 그녀 집은

어느 순간 디폴트 값이 되었던

그  후로 4번 정도 더 그녀의 집에 갔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하고

한동안 못 만나다가

지난주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볍게 나왔다

그녀의 집 근처에서 만나서

예전처럼 1차 삼겹살, 2차 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향했다면

그날은 집 앞까지만 데려다 주기 위해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파트 정문 앞에서

그녀가 나에게 허그를했다

우정의 허그 라기보다는

전자팔찌를 찰 정도의 허그였다

쫌 과한데..라고 생각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오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서

너무 익숙해서, 그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문뜩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몰랐지?

물론 그녀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내가 그녀를 좋아했나? 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알았으면  달라졌으려나?


누가 나를 좋아하니 좋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나,

솔직한 나의 감정은 아닌 것이다


내가 그녀를 좋아했나?

아니 내가 그 누군가를 좋아해 보긴 했나?

설레어 본 적이 있나?


확실한 것은 그날, 그녀의 아파트 정문 앞에서

그녀가 나에게 허그했을때 설레긴 했다

(그게 설레임인지, 그녀의 남편이 볼까 봐의

두려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애의 세포들이 다 죽어서 그러지

그런 감정들이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와보니 와이프는 자고 있다

옆에 누웠더니 귀찮다고 나가 자라고 한다

나도 옆에 눕고 싶지 않았다

서로 원한 바를 이뤘다.  쳇..


유부남도 가끔은 설레이고 싶다

그 설레임이 와이프이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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