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물어보지 않은 진실의 차이
라면 먹고 가실래요?
우리 회사는 일 년에 한 번씩 전체 회식을 했다
백화점 파트도 참석을 했는데
백화점 파트는 매장에서 일하다 보니
서로 잘 모른다
회사에서 볼 일도 없고
조직도에서 검색도 안된다
그날 우연히 옆자리 앉은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세요?" 나에게 물었다
"28살입니다. 올해 신입사원입니다"
라고 농담으로 대답했다
그때 32살이었지만,
그 당시 여자친구도 있었고 해서
별로 말 섞기 싫었다
딱 봐도 신입사원의 모습이 아닌데,
뻥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 말 안 걸겠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머 어떡해.. 나 너무 늙었나 봐ㅜㅜ"
"저는 30살이에요"
"누나였어요? 저보다 어린 줄 알았죠
감쪽같네~ 오늘 성공했네요 어려 보이기...
아.. 속을뻔했네
곱게 늙으셨네요~"
식상한 멘트로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나의 거짓말에 속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보니
대화를 더 하고 싶어졌다
키도 크고, 늘씬하고 비주얼도 상당했다
회식이 파한 후
집에 가려 하는데
"언니들 눈치 보이니,
다른 동네에서 한잔 더 하실래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나는 나이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굳이 물어보지 않은 진실(여자 친구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 사냐고 물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회식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택시 타고 그녀 집 근처의 이자카야에 갔다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남녀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서로의 연애사이다
왜 헤어졌는지..
그 당시 어려움과 상대방에게 말 못 했던
이야기는 오히려 처음 보는 익명의 상대에게
쉽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괜히 걱정 끼칠까 봐
쉽게 이야기 못한다
내가 나에 대해 오픈하자
그녀도 최근 헤어진 남자 친구이야기를 했다
백화점은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다 보니
데이트하기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그 남자가 바람을 폈다
한껏 그 남자를 같이 욕해줬다..
나쁜 새끼네.. 짠!!
진짜 그랬어요? 짠!!
에이 그러면 안 되지.. 짠!!
그녀의 상처는 건배하기 딱 좋은 순간을 만들었다
그녀의 상처가 더 드러날수록
우리의 술병은 더 늘어갔다
그녀는 본인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너무 즐거워 보였다
나처럼 공감해 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집 가서 한잔 더 하실래요?"
계획에 없던 상황이 전개됐다
아.. 이거 뭔가 복잡해지는데...
나이도 속인 데다가
처음 본 회사사람의 복잡해지는 관계가 가져 올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여자 친구의 전화는 계속 오고 있었다
(물론 무음으로 사전에 바꿔놨었지만)
자기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는
그 짧은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런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의 모습에
그녀가 빵 터졌다
내가 뭔가 순진해서 망설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누나인티 너무 났죠?
이야기 조금 더 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 거 같고
집에 맥주 사놓은 거도 있고 해서
한 이야기예요" 라며
민망했는지 혼자 빵 터진 웃음을 애써 참으며 둘러댔다
진짜 이야기만 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요?"
내가 짓궂게 묻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몸을 비비 꼬면서 말을 못 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 모습에 도저히 그녀를 보낼 수 없었다
일단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집 앞까지 같이 왔다
밤 12시
그녀의 집 앞에서
무음의 핸드폰은 여친의 전화로 계속 반짝거리고 있고
그녀는 내 앞에서 자기 집에 가자고 하고
내 머릿속은 이제 술로 인해
이성적인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에 왔다
빌라촌이라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누군가 움직였는지 입구등이 켜졌다
그 입구등 불빛 사이로 보인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멀어지려 한 거짓말은 우리를 연결한 소재가 되었고
"여자 친구가 있다"라는 말 하지 않은 진실은
나를 그녀의 집 앞까지 데리고 왔다
나도 후회하고, 그녀도 후회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